한국일보

코리언 타임 근성

2007-11-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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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

며칠 전 한 한인교회에서 친구의 아들 혼사가 있었다. 결혼식 시간 10분 전에 교회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식장 안을 들여다 보고 아니나 다를까 했다. 예정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식장에는 기껏 열 사람이 될까 말까한 사람들만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바깥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식이 시작되자면 빨라야 30분은 지연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식 예정 시각이 되자 어느새 주례를 맡은 목사는 자리를 하고 있고 식의 첫 순서인 양가의 어머니가 촛불을 들고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이 때야 바깥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하객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 자리를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늦게 참석하는 하객들을 기다리지 않고 예정시간에 맞추어 식을 거행하는 주례를 맡은 목사에게 존경이 갔다. 하찮은 일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결단이 필요한 용기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조적으로 말하는 ‘코리언 타임’이 아직도 어느 모임, 어느 행사 할 것 없이 없어지지 않고 그 깊은 뿌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혼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래도 문명된 행사로 꼽는 음악 연주회 같은 행사에도 참석자들은 언제나 에누리 시간을 붙여서 참석하는 사람이 다수인 것은 감출 수 없는 현실이다.참석 시간에 늦은 것은 이미 우리 문화가 되어있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우리가 알
게 모르게, 또 다른 면의 코리언 타임이 가져오는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고지서를 받고 돈 보내는 일이 그것이다. 모든 고지서는 그 기한이 있게 마련인데 그 중에는 그 기한의 성격이 절대적인 것이 있다.

절대적이라 함은 그 기한을 넘기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경우에 오늘 갚기로 했던 빚을 내일 갚는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각종의 법적 공과금이나 보험료는 그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당장 중요한 법적 효력이 발생된다.자동차 보험을 생각해 보자. 정해진 날짜와 시각이 지나면 즉각 보험 효력이 정지됨은 말할 것도 없다.

뉴욕주의 도로교통법은 자동차의 보험이 효력을 상실하면 그 차주의 운전면허가 정지된다. 따라서 운전면허가 정지된 이유로 체포되는 사건이 세계의 어느 인종보다 많은 것이 한국인이다. 역시 코리언 타임이 세계적이란 뜻이다.법원에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경찰에 체포되어 오는 한인들의 사건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이 운전면허 정지 위반이고 또 그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 보험료를 제 때에 지불하지 않아 면허가 정지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이한 발견은 이들의 대부분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는 자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건설업이나 집 수리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법원에서 신상 조사 질문을 하다 보면 이런 혐의로 들어온 사람들이 거의가 이런 사람이다 보니 법원의 직원들이 이제 운전면허 정지 사건을 ‘카펜터가 들어왔다’고 농담을 하는 정도이다. 이들의 직업이 불규칙이다 보니 생활의 패턴 또한 불규칙해 졌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직업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성향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건설업자 중에 사업을 성공리에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런 일로 법원에 오는 일은 드물다. 자유업에 종사하지만 나름대로의 규율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업도 성공하고 있다는 뜻이다.이런 일로 법원에 다녀간 사람들은 보험 에이전트가 처리를 잘못해서 늦어졌다는 등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새겨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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