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정책 대결로 대선경쟁 하라

2007-11-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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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한국의 선거가 또한 그런 것 같다. 얼마 전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 선거는 막판까지 변수가 많고 콤팩트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 외국인이 보기에도 한국의 선거는 아슬아슬한 게임처럼 흥미롭게 보이는 모양이다. 농구경기처럼 콤팩트하게 진행되거나 야구처럼 9회말 역전승이 터지는 예측 불허의 경기가 구경꾼에게는 흥미로운 경기이다. 한국의 선거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장장 2년간에 걸쳐 진행되는 매우 지루한 선거이다. 내년 11월에 있을 대선 레이스는 지난 연초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공화당과 민주당의 예비 주자들이 물망에 오르내렸고 금년 중반부터 우세한 예비주자들이 드러났다. 연말을 전후해 각 주의 예비선거가 시작되면 수개월간 예선을 거쳐 각 정당의 공식 후보가 지명되고 양당 후보간의 치열한 선거전으로 당락이 결정된다. 오랜 선거운동기간을 통해 후보가 검증을 받고 선거인단의 수를 추가해 가기 때문에 본선거에 임박하여 갑자기 선거에 뛰어들 수는 없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는 다르다. 선거를 앞두고 한달이 중요하고 그보다도 마지막 일주일, 그보다도 선거 하루 이틀 전에 판세가 뒤집힐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년 동안이나 50% 이상의 지지율을 받고 있었지만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는 사람은 “글쎄, 두고 봐야 알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대답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 한국 대선이었다. 지금은 아무리 지지율이 높아도 집권세력인 정부여당이 무슨 수를 내지 않겠느냐고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수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이회창씨가 무소속 후보로 출마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이회창씨의 출마계획은 대선구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 때문에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우세로 이명박 대세론을 받아들이고 있던 정치권과 일반국민은 이회창씨를 제 2의 이인제로 맹렬히 규탄하고 있다. 보수진영의 분열로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여권은 의도와는 달리 여야 구도가 무너지고 보수 대 보수의 선거구도가 되자 보수진영의 두 후보를 똑같이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면 선거는 이제부터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전망은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의 3자 구도이다. 만약 이명박과 정동영의 세가 비슷비슷했거나 약간 차이만 났었다면 이회창은 출마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이 절대 우세한 상태였으므로 이회창으로서는 이명박의 기반을 잠식하면서 새로운 지지세력을 추가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명박의 경우 이회창의 등장은 기존 지지세력의 일부 이탈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앞으로 남은 BBK사건의 귀추에 따라 판세의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편 정동영은 양 이씨와 힘겨운 대결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여권 단일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의 천하삼분지계의 기본구도가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러면 이같은 3자 구도가 끝까지 갈 것인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며 또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3자 구도에서는 소수 국민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는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의 분열로 인한 어부지리로 당선되어 여소야대의 정치구도를 만들었다. 이제 와서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선거가 막판까지 돌발적인 변수에 좌우되는 것은 한국인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은 머리회전이 빠르고 행동이 민첩하다. 이 점은 참으로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데도 명수들인 것 같다. 이합집산이 큰 폐해를 남겼던 예가 사색당쟁이다. 한국의 역대 대선에서 이러한 이합집산은 지역중심,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대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선 후보들의 정책은 온데 간데 없고 인물 중심으로 세력을 모으다 보니 판세가 요동을 치고 예측 불허의 선거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후보들이 정책으로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은 이명박이든 이회창이든 정동영이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 없다. 각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특정 후보의 당선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나라와 국민을 잘 살릴 수 있는 좋은 정책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이런 정책과 능력으로 국민의 인정을 받고 있다면 그 어떤 변수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책 대결에서 국민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두 후보가 최종 당락을 겨루는 선거로 이번 대선 구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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