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이혼이 유행인가

2007-11-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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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최근 한국에는 잉꼬부부로 알려졌던 연예인 부부들의 이혼 또는 이혼 후 소송사태로 화제다.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이찬, 이민영부부가 헤어지고 나서 그칠 줄 모르는 진흙탕 소송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박철, 옥소리 부부가 속전속결식의 이혼을 감행해 시청자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이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이혼실태는 이제 도를 넘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젊은이들은 물론, 이미 몇 십 년 같이 살아온 부부들마저 뒤늦게 황혼이혼입네, 뭐네 하고 이혼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여파는 이 곳 해외거주 한인가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로 뉴욕 한인사회에도 이민 와 부부가 같이 고생고생해서 어느 정도 살만하게 된 즈음에 안타깝게도 이혼을 하는 가정을 볼 수 있다. 부부가 이역만리까지 와서 살다 결국 앙금만 남기고 갈라지게 되고 마는 것인가.
지난 몇 년 사이 내가 아는 몇 가정도 이런 저런 이유로 부부가 갈라섰다. 그 사유는 성격, 재정문제, 배우자의 외도 등이라고 한다. 잘 살려고 이민 와서 살다 겪는 이런 고통은 보기에 너무나 안타깝다. 이왕 이룬 가정 끝까지 잘 살아 좋은 결실을 맺을 수는 없을까?


가정문제 상담기관에 의하면 뉴욕의 한인가정 실태도 한국에 못지않게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언제고 기회만 되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부부가 예상외로 많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보고 들은 한인가정의 이혼실태를 예로 들면 남편의 대학공부를 위해 유학차 온 한 젊은 여자의 케이스가 있다. 그녀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힘든 일을 마다 않고 억척스레 일을 했다. 결국 그의 남편은 공부를 다 끝내고 한국에 좋은 자리로 취직이 돼 이들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되고 만다. 남편이 어느새 억척부인이 되어 버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 부부는 갈라져 남편은 새 여
자와 재혼을 하였고, 부인은 화를 못 이겨 자살로 항변했다. 또 하나는 이른바 ‘국제결혼’을 한 케이스다.

어느 날 상담기관에 한 부인이 스카프로 얼굴을 거의 가리고 검은 안경까지 쓴 상태로 불쑥 나타났다고 한다. 얼굴과 눈에 온통 멍든 자국을 한 이 여인은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갈 곳이 없어 상담기관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가 상당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만 개중에는 아시아 여성이라는 호기심에서 결혼을 했으나 끝내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에는 IMF이후 경제적 이유로 이혼율이 더 급증했다고 한다. 이혼의 사유가 꼭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일류 여배우가 한 때 잘 나가는 모 그룹의 며느리로 시집을 가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남편의 방종과 시댁식구의 냉대에 못 이겨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또 한국에서는 손꼽는 모 그룹의 현직 회장이 얼마 전에 ‘황혼이혼을 당해서’ 화제가 됐었다. 최근에 94년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의 아나운서 한승주씨가 몇 해 전에 모 재벌 2세와 결혼했는데 최근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혼은 이제 이들 명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면 보편화된 느낌이다.

60년대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싸르트르와 시몬느 보봐르가 이른 바 ‘계약결혼’을 해서 세상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로는 특별한 사상가들의 일종의 사회 비평적 ‘show up’이나 퍼포먼스적 행위로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즈음 세태는 ‘결혼, 즉 계약’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쉽게 ‘이혼, 즉 계약파기’를 죽 먹듯이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결혼이나 이혼은 사회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문제가 우선 된다. 이혼하는 당사자의 아픔과 고통은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인 바에야’ 누가 설교를 하지 않아도 이혼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을 왜 모르겠나? 당사자의 고통은 그야말로 ‘살아봐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혼이란 권할 수도, 금할 수도 없는 일종의 딜레마인 것이다.

누군가 이혼하겠다고 매일 찾아와서 울고불고 해서 할 수 없이 “그러면 이혼해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잘 살고 있어서 계면쩍었다는 이야기며, “절대로 이혼하지 말라”고 했더니, 결국은 이혼하고 재혼해서 인사도 안 오더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이혼은 결국 개인문제를 넘어서는
사회문제라고 생각했다. 답답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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