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탈북자 문제는 ‘인권’ 아닌 ‘생존권’

2007-11-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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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며칠 전인 지난달 29일 미하원은 중국에 대해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중단하고 인권을 존중하라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중국이 탈북자를 불법이민으로 규정하여 강제 북송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유엔 인권고등판문관실의 탈북자 접근을 허용하여 탈북자들에게 망명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 결의안의 골자이다. 북한의 탈북자들은 지금까지 중국 국경을 통해 30만명이 탈북을 했는데 중국은 이들을 붙잡아 북한에 돌려보내고 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만 해도 수 천명의 탈북자가 강제 북송되었다는 것이다.탈북자의 강제 북송은 최근들어 더 심해지고 있는데 중국정부는 탈북자들을 마치 형사범처럼 색출하고 있다. 지난달 9일에도 이런 사례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베이징 한국 국제학교의 유치원생들이 하교하고 있을 대 20대 탈북청년 남녀 4명이 유치원생들을 밀치고 학교로 진입했다.


중국 공안원들이 이들을 쫓아 출동하는 바람에 뒤이어 진입하려던 20대 여성 3명은 도주했다. 공안원들은 학교로 들어가 4명을 연행했다. 이 때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들도 현장에 달려왔는데 공안원들은 신분증을 제시한 영사들을 밀쳐냈고 그 중 한명은 팔목을 비틀려 끌려 나왔다고 하여 외교문제까지 비화됐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2005년 12월에도 탈북여성이 체포되어 강제 북송된 적이 있었다.

중국이 탈북자들을 체포하여 북송하는 것은 이들이 불법 월경을 한 밀입국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미국이 멕시코 국경으로 밀입국한 사람들을 체포하여 멕시코로 보내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멕시코 국경을 넘다가 붙잡힌 사람들은 멕시코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탈북자의 경우는 다르다. 탈북자들이 북송되면 처벌을 받아 감옥이나 수용소로 가게 되고, 심한 경우 공개처형까지 당하게 된다. 탈북자가 단순한 밀입국자가 아니고 난민이라고 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탄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국이 난민의 자격으로 다른 나라로 가겠다는 탈북자들까지 잡아들여 강제 북송을 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북한에서 탈북이라는 주민 이탈현상이 심해지면 북한은 국가로서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북한은 탈북을 막아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탈북자가 발생하면 체포 송환하여 혹독하게 처벌함으로써 모든 주민들의 탈북 의지를 근절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북한과 국경이 닿아있는 중국으로 탈출하는데 북한과 정치적 동맹관계에 있는 중국이 북한을 도와야 하는 처지이니 탈북자를 잡아서 강제 북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이러한 탈북자 대응책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미국 국경을 넘는 밀입국자들은 보다 나은 경제적인 삶, 즉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밀입국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탈북하는 사람들이다. 사흘 굶으면 도둑질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굶어 죽는 마당에 무슨 짓인들 마다하겠는가. 앉아서 굶어 죽느니 탈북하다가 잡혀 죽게 되더라도 일단 탈북을 결행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잡아다가 처벌한다고 해도 탈북 사태는 줄어들지 않는다. 탈북과 북송, 처벌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잡아가는 중국과 처벌하는 북한만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나라가 될 뿐이다.

북한이 탈북사태를 막기 원한다면 국민들이 먹고 살 수 있게 경제를 살려야 한다. 지금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잘 먹고 잘 살면서도 더 잘 살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 북한이 이렇게 낙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누가 이런 나라에 살려고 하겠는가. 즉 사태의 타개책이 결국 경제발전 뿐이니 중국도 북한을 정말로 도와주고 싶으면 탈북자를 잡아서 강제 북송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살 길을 찾도록 인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북한이 경제 발전을 원하지만 체제의 붕괴를 우려하기 때문에 개혁 개방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굶어 죽고 있다면, 또 그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떠나고 있다면 그런 국가와 그런 체제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국민을 살리기 위한 것이 국가와 체제라는 점에서 볼 때 탈북자 문제는 북한이 나아갈 길을 선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셈이다.그런 점에서 미 하원의 탈북자 북송 반대 결의안은 단순히 인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탈북
자의 생존권에 관한 문제이다. 굶주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탈북자들을 살리라는 외침인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의 외침이 되어야 한다. 한국도 북한에 대해 무조건 침묵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북한에 있는 우리 민족을 잘 먹여 살리든지 아니면 어디든지 가서 잘 살도록 놓아주든지 하라고 크게 외쳐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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