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슴의 정치, 머리의 정치

2007-11-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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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이조 세종대왕 때 맹사성은 정승의 지위에 있었다. 어느 비오는 날 병조판서가 맹정승의 집에 찾아갔다가 정승의 집이 새는 바람에 옷이 흠뻑 젖었다. 집에 돌아온 판서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일국의 정승의 집이 비가 새거늘 판서의 집이 어찌 이럴 수가 있으랴!” 그는 말없이 자신의 대궐같은 집을 몸체 하나만 남기고 몽땅 헐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공자시대는 덕치(德治)의 정사(政事)가 이루어져 명망이 높았다. 무사(武士)가 가노(家老)를 죽이고 또 가노는 군주를 해치는 전국시대의 정치와는 격이 달랐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스승에게 묻기를 “덕치란 어떤 것입니까?” 이에 공자는 대답하기를 “정치를 하는데 덕을 행하면 천하의 인심은 자연히 귀복(歸服)하여 그것은 마치 북극성이 한자리에 머무르고, 많은 별들이 그 주위를 싸고 도는 것과 같다”라고.


계강자(季康子)는 노(魯)나라의 세 가노(家老) 중에 으뜸가는 세력가였다. 하루는 그가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물었다. 공자는 “政은 正이니, 네가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먼저 바르게(正) 도(道)를 행하면 다른 사람들이 正을 행하지 않을 때 매섭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위정자가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교화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나 만일 위정자가 바르지 않을 때에는 명령을 내려도 백성은 복종치 않을 것이다. 공자의 생각은 모든 것이 이같은 정(正)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서양정치의 미덕을 제도의 기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동양의 정치는 인간정신의 향훈(香薰)에서 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매사가 스스로 옳은 데서 판단의 기준이 시작되며 이것이 바로 덕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모든 도덕의 총화를 보여주는 예술의 경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동양의 정치는 가슴으로, 서양의 정치는 머리로 하는 셈이다. 그러나 ‘가슴’에만 치우칠 것 같으면 정치는 무슨 수도(修道)처럼 되기가 쉬우니 ‘머리’의 그것도 필요한 것이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 기자들로부터 정치인의 자질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것은 내일, 내주, 내월, 그리고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언할 수 있는 재능이다”라고 말했으니 이는 정치가의 머리를 강조한 말이며, 그 다음에 “그리고 후일에 그 예언이 맞지 않았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역시 가슴과 머리의 조화를 그는 잊지 않았던 것이다.요즘 미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는 다같이 차기 대통령 선거 때문에 열병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백성이 잘 살 수 있겠는가? 망둥이가 뛰니까 피래미도 뛴다는 격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따위는 아랑곳 없이 너도 나도 줄줄이 대통령 한 번 해보겠다고 날뛰는 꼴이라니 정말 목불인견이라 하겠다.근자에 와서 백성들이 왜 그다지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옛말에 “신발이 발에 잘 맞으면 발을 잊어버리고, 허리띠가 허리에 적당히 매어져 있으면 허리를 잊게 된다”고 했는데 백성들이 저마다 정치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정치가 제대로 되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선 임금님에게 ‘성군(聖君)’이 되어줄 것을 기대했으며 그러자면 임금은 백성을 위한 덕치를 베풀어야 했던 것이다. 모름지기 집권자는 올바름(正)을 정치의 제일 목표로 삼아야 하거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집권을 하고 나면 부정을 일삼기에 급급하니 나라 꼴이 어찌 될 것인가?근자에 고국에선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권력형 비리’가 또다시 난무하는 가운데 정치 일번지인 청와대가 그 중심이라니 서글프다 못해 마음이 저려온다.

가슴은 텅 빈 가운데 잔머리만 굴리는 정치라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한낱 야바위 놀음인 것이다. 지금이 아무리 말세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깡그리 다 부패한 것이 아니라면,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순수한 정치인 삼천 명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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