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대판 봉이 김선달

2007-08-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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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선(하버그룹 수석부사장)

지금도 그렇다지만, 40여년 전에도 미국으로 이민 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미국에 이민가는 것은 마치 지상의 천국으로 가는 듯, 일생에 두 번 없는 말할 수 없는 행운이었다.

기어코 여의도 공항에서 그 유명한 이민 가방 둘을 들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요즘들은 돈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니 이민 가방 이야기가 나오면 실감도 안 날 것이고 이해도 못할 것이다. 하여간 그 당시에 이민 온 사람들은, 정작 이민같은 이민을 온 사람들이었었다. 원 베드룸에서 오손도손 새 삶을 열어 나가면서도 빡빡하고 힘든 고생이 즐겁기만 할 때였다.
한 일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서 그래도 이곳에서 살려면 우선 차 한대는 있어야 되겠다 싶어 중고차 샤핑에 나섰다. 65년도 폰티악의 레망즈는 마치 물찬 제비같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에 꼭 들었다. 이틀 후에 차를 픽업하고는 온가족이 흥분되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추운 12월 밤, 드라이브도 하고 시내 구경도 하자고 집을 떠났다. 그 기분은 지상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곳 저곳을 누비다가 신호등에 막혔다. 다시 출발하려는 순간, 엔진이 죽으면서 적막이 찾아왔다. 아무리 키를 틀어도 시동이 다시 걸리지 않는다. 라디오도 안 나오고 전조등도 먹통이다. 분명 배터리가 죽은 것이 틀림 없다.식은땀이 나고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몇 분 쉬었다가 혹시 되는 수도 있는데 몇 번을 시도해 보아도 말을 안 듣는다. 갑자기 옆에서 고맙게도 젊은 흑인 두명이 차에서 내려 우리 차를 길 옆으로 밀어놓고 점프를 해주어 다시 엔진이 걸렸다. 고맙다고 악수하는데 이들이 하는 말이 “오리엔탈 하고 흑인이 서로 뭉쳐야 산다”면서 사라졌다.

다음 날, 차를 산 딜러에 가서 배터리 이야기를 하면서 불평을 했더니 이 백인 중년신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하는 말이 충전해 주겠다고 말하면서 왈, “이런 일은 흔히 있고, 그래서 자기는 항상 스페어 배터리 하나를 비상용으로 트렁크에 넣고 다닌다”고 한다. 대동강 물은 팔아먹지 않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미국판 봉이 김선달이 아니고 무엇인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그 후론 다행히 차에 아무 문제 없이 지났다. 몇달이 지나서인가 난데없이 뉴욕시에서 주차위반 벌금 독촉장이 날아왔다. 나는 주차 위반도 한 일이 없고 티켓을 받은 적도 없어 의아했다.

주소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곳이고 시간도 밤 11시25분. 곰곰히 생각한 즉, 내가 차를 샀던 그 딜러의 주소였다. 날짜는 배터리 문제로 차를 맡기고 온 바로 그날 밤이다. 당장 전화를 해서 주차위반 이야기를 하니 자기네는 고객들의 차를 꼭 안에 주차하지 절대로 길거리에 놔두지 않는다며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뗀다.

두번 세번 전화해 보아도 자기네는 책임이 없다고 완강하게 부인한다. 할 수 없이 퀸즈 블러바드에 있는 법원의 스몰 클레임 코트에 가서 3달러의 고소비를 내고 이 딜러를 법정에 고소했다. 한달 후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는 재판관 앞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내가 승소하고 주차벌금 전액을 보상받는 법정 승리를 하면서 미국판 봉이 김선달의 버릇을 고쳐 놓았다.전에도 이런 봉이 김선달들이 있었지만 오늘도 변함은 없다. 세탁소에 맡겼던 바지 한 장을 물고 늘어지면서 5000여만 달러를 받겠다고 어처구니 없는 고소까지 하는 일이 있으니 지상 천국이 항상 천국만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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