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괜찮아요”

2007-08-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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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춘 석(뉴욕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

“더 아픈 동료를 석방해 주세요”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여성 인질 가운데 한명이 석방 기회를 양보한 것으로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대단한 용기를 발휘한 것이다.

탈레반한테서 풀려날 예정이었던 한국인 여성 인질 1명이 탈레반에게 “나는 건강이 좋아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우선 석방해 주라”고 요청해 결국 다른 인질이 풀려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납치사건을 주도했고 현재 인질들을 억류하고 있다는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의 탈레반 사령관 압둘라는 전화 인터뷰에서 “건강 상태에 따라 (가장 몸이 안 좋은)여성 인질 2명을 골랐으나 그 중 한명이 ‘나는 건강이 좋아지고 있으니 대신 다른 여성 인질을 석방해 주라’고 해 그의 제의에 동의했다”며 “그 용기있는 여성의 이름은 매우 어려워서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사는 또 한번 우리에게 친구를 위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을 만큼의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을 연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를 알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주는 연습을 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단순한 양보가 아니다. 생명을 내던진 것이다.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죽음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생애, 즉 우리의 슬픔과 기쁨, 우리의 절망과 희망, 그리고 우리의 외로움과 친밀함의 경험을 새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귀한 일에 아무나 동참하지는 아니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흠집을 찾아내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입지를 더욱 세우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 시대에는 더더욱 나설 자가 없다.인질로 잡혀있는 사람들은 괜찮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동료가 죽어 나가고 아픔은 시시때때로 다가오고, 앞날은 불투명한 상황인데 살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곧 생물학적 의미 뿐만 아니라 자존심, 재물 등 갖고있는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멀리 있으면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려면 자주 머뭇거리고 한참이나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천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오늘도 우리 곁에서 수없이 들려온다. 내가 살고 남이 죽어야 하는 자리인데 자리를 바꿔 주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신문기사의 한편에서는 더 많은 난을 제공하면서 내가 저 사람보다 낫고,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몇 줄을 다 채우지 못한 “나는 괜찮아요. 더 아픈 동료를 석방해 주세요” 이 기사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아는 것으로 다 되지 아니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내려놓는 용기, 정직하려는 용기, 이러한 것이 이 시대를 이끌고 가는 새로운 용기가 되어야 한다.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생명을 볼모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명제가 분명한데도 한편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내가 갖기 위해 납치를 하지만, 살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앉는 그들의 용기가 나를 새롭게 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라는 말씀을 실천한 귀한 믿음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법이다. 남은 그들은 또 하나의 기적과 같은 역사를 계속 기록해 나가며 모두가 사는 아름다운 열매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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