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홈리스의 회한(悔恨)

2007-08-18 (토)
크게 작게
장태정(회사원)

대지에 어둠이 깔리고 땅거미가 기어들면 새들도 제 둥지를 찾아든다. 그러나 이 지구 전체가 마치 자기들만 위해 있고 또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자칭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 중에는 가끔 어두워도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홈리스(Homeless)라고 부른다.

비록 돌아갈 집이 없다고 해서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자기들이 살아가는 삶의 본거지는 있다.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며 ‘동가식 서가숙’하는 것이 아니라 ‘귀소본능’에 의해서 어두워지면 삶의 본거지를 찾아 돌아간다.뉴욕시의 5개 보로를 다 돌아다니며 살아본 후 ‘바로 여기다’ 하고 퀸즈의 서니사이드를 삶의 본거지로 정하고 20년 가까이 홈리스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60대 초반으로 언뜻 보기에는 배우 안소니 퀸을 연상시키는 인상에 건장한 체구를 지닌,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거리에서는 ‘케딜락’으로 알려진 백인 남자 홈리스가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자기 말대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인 군에 입대해서 일본 등 해외를 여행하는 경험을 한 후 제대해서 직장도 얻고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아 기르면서 소위 최강 최부국인 미국의 한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삶을 시작한다.그렇게 시작한 그의 삶의 돛단배에 순풍만 불어주진 않았다. 80년대 종반에 들어서면서 그가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직장을 구해 나서지만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좌절만 더해가고 더 추구해 볼 의욕을 잃게 되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 집으로 돌아가 좋은 소식만을 종일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고개를 떨군 채 좌우로 힘없이 흔들어 보여주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실의에 찬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는 자기 인생의 교차로에 서게 된다. 더 이상 자기 아내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 날은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먹게 되고 그것이 결코 짧지 않은 그의 홈리스 생활의 첫 밤이 되었다.밤이 되어 어디서 잘까 하고 길을 오르내리다 길가에 파킹되어 있는 ‘트레일러’ 밑에서 잠을 청해서 잠이 막 들었을 무렵 누군가 자기의 호주머니를 뒤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잠결에도 그 뒤지고 있는 손을 잡기 위해 정신을 모은 후 번개같이 내리쳐서 잡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손에 잡힌 것은 사람의 손이 아니라 자기가 낮에 먹다가 남겨둔 피넛 샌드위치를 먹으러 들어온 배고픈 ‘쥐’였다.

허탈해진 그는 쥐도 풀어주고 샌드위치도 함께 던져주는 자비를 베푼다. 그렇게 잠을 설친 후 그는 어떻게 하면 쥐떼들을 피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마치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듯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쥐들이 좋아하는 피넛을 사 먹은 후 껍질을 모아 두었다가 잠자리 주위에 뿌려놓고 자면 쥐떼들이 몰려오다가 그들이 좋아하는 피넛이 널려있는 것을 보고 진위를 검사해 보느라 내는 ‘바스락’ 소리를 쥐떼 침입의 사전 경보장치로 이용하면 되겠구나 하는 세상 최초의 발명(?)을 하게 된다.

에디슨의 전기 발명과 그의 발명이 비록 그 발명의 결과를 이용하고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필요’가 ‘발명’의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는 공통점은 있는 셈이다.우리의 일상생활 중 집을 나서서 낯선 곳을 찾아갈 때는 숱한 갈림길과 교차로를 만나게 된다. 그 때마다 꼭 바른 길을 택해야만 행선지에 도착할 수 있다.
만약 길을 잘못 택했을 시에는 잘못된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잘못되기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후, 한번도 자기의 아내나 딸의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는 케딜락은 지금은 그가 길을 잃어버린 그 ‘교차로’로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거리에 와 있는 것을 안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또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냉철한 이성보다는 순간적인 감성에 기댄 판단이 처음 나서본 외길 인생길을 찾아가는 자기의 안목을 흐리게 했다는 회한(悔恨)을 하고 또 해본다. 그러나 이젠 그것 또한 부질없는 것도 안다.

겨울이면 뼛속까지 파로드는 추위에 떨면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 마저도 쥐들에게 빼앗긴 채 근처의 도넛 가게에 연신 드나들며 이미 오래 전 중독된 커피를 사들고 길 모퉁이에 서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보면서 비가 올 때 비를 막아주는 천정이 있고, 바람이 불 때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고, 쥐가 기어다니지 않는 바닥이 있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집에서 나도 살 수 있는데 하는 생각에 깊이 빠져든다. 그때는 유난히 더 멀리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것같아 보여 그의 삶의 궤적을 아는 사람이면 그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