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8.15 단상

2007-08-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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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우리는 지난 62년 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을 광복, 또는 해방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어두운 통치하에서 독립을 했으니까 빛을 다시 되찾았다 해서 이름 한 게 광복이다. 과연 우리나라가 광복은 됐지만 민족이 진정한 해방을 맞은 것인가. 나라가 주권을 되찾았다고 해서 광복이
라고는 할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우리 민족 모두가 이에 합당한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

광복은 국가적인 것이지만 해방은 민중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광복은 됐지만 우리 민족은 아직까지 진정한 해방의 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8.15해방이 되자마자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며 우리는 동족끼리 싸웠다.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는 이 이데올로기 싸움
에 어린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일본이란 나라의 강제 점거 통치를 저주하고 원망하면서 얻은 민족정신은 다 어디 가고 같은 민족끼리의 싸움은 결국 6.25 전쟁으로 까지 이어졌다. 해방의 선물이었을까?


해방 이후 지난 62년 동안 세계대전의 주범인 일본은 커다란 요동 없이 세계무대에서 승승장구해온 반면, 한반도는 수많은 격동과 질곡을 겪어야 했다. 한반도의 분단과 그 것으로 인한 독재정치는 남북한 공동사항이었다. 북한인 일당과 일가의 철권독재로 인민의 삶은 궁핍할 대로 궁핍해졌고, 남한은 끊임없이 혁명과 정변 속에서 국민들의 불안한 삶의 동요는 하루도 안정될 날이 없었다. 해방 후의 최대 과제는 언제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 ‘한솥밥’을 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해방 60여년... 이제야 정신대 문제가 가시화되어서 ‘결의안’이 미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는 뉴스이다. 사실 ‘정신대’란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이다. 태평양 전쟁 중에 총알받이로 전선에 내몰린 병정들의 위안부로 식민지에서 30만 명의 젊은 여성들이 동원됐다. 그 중에 20만 명이 조선 처녀들이었다. 약소국가에 태어난 죄로 얼마나 기구하고 비참한 일을 당했던가! 이러한 일들이 바로 주권을 상실한 국가에 사는 식민지인들의 아픔이었다.

이러한 전례 없는 짓을 자행한 일본은 그 실체를 인정할 수도, 사과할 수도 없는 입장일 것이다. 사람으로서,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얼마나 창피하고 수치스럽겠는가? 그들의 속성은 개인적으로는 모두 다 아주 싹싹하고 친절하지만 집단적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게 통례이다. 섬나라 국민들은 보통 다 침략적인 근성을 갖고 있다. 정신대는 물론, 산의 나무든, 땅 속의 광석이든, 우리나라의 산업기반을 닥치는 대로 송두리째 앗아간 일본의 만행을 보더라도 아마 일본의 사과는 쉽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신대결의안 통과가 되던 8월 초, 톱뉴스로 1면에 나란히 실린 것은 ‘아프카니스탄 인질 사태’이다. 해방 후 오늘날 독립국가로서 대한민국은 주권국가로서 주권을 가진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자국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자주적으로 결단해야 한다. 자국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자국의 국민이 부당하게 공격을 받아서 생명에 손실을 당했다면 마땅히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자주 국가는 당연히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방력과 군대를 갖고 있는데, 그러한 때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이러한 결정은 아프카니스탄이나 미국의 간섭 없이 주권국가로서 자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년전 이라크에서 발생한 ‘김선일 피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결과가 오늘날 ‘인질사태’를 재발시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권국가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비 주권국가인 식민지 상태에서 발생한 ‘정신대 문제’와 주권국가로서 당면한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인질사태’는 서로 비교되며 시사하는 점이 많다.
8.15 62주년,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우리 국민이 진정한 해방과 통일의 기쁨을 맛볼 날은 언제인지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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