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 카사블랑카

2007-08-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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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주간매거진 H)

지난 주말 저녁 뉴욕시티 북부 웨체스터에서 있었던 한 장례예배에 참석했다. 고인은 부인 곁에서 늘 잔잔한 미소를 짓던 노신사였다.장례식에서 자손들의 조사를 통해 고인이 젊은 시절에 본국 정부 요직에서 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뉴욕에서 공직에 근무하던 그는 유신정부가 몰락하면서 조국에 돌아가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이제는 자유롭게 조국의 하늘 고향땅으로 훨훨 날아가시라”는 눈물어린 조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뉴욕은 유엔본부가 있는 국제도시이며, 지정학적으로도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미국의 현관이기 때문에 수많은 국적을 가진 정치적 망명객이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도시이다.북아프리카 모로코에 지중해에 인접한 카사블랑카라는 도시가 있다. 동명의 영화 ‘카사블랑카’ 덕분에 유명해진 이 도시는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전화 속에 있을 때에 각국의 망명객들이 들끓던 도시이다. 그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명우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이 영화는 영화사상 명작으로 올드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오늘날 뉴욕은 카사블랑카처럼 현대사에 비밀을 간직한 수많은 정객들이 자의 반 타의 반 망명처로 삼고 사는 도시이기도 하다. 격동하던 20세기 초반 몰락한 유럽왕국의 왕족들과 귀족들이 피난처로 삼았고 불운한 혁명가들도 재기하기 위해서 뉴욕을 발판으로 삼았다. 러시아 혁명아 트로츠키도 스탈린에게 축출된 후 한때 뉴욕에 머물렀었다. 중동의 왕자들도 피난처 뉴욕에서 공부한 후 화려하게 권좌에 복귀하기도 한다.필리핀의 정치인 아키노는 뉴욕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탔지만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암살되고 말았다. - 그의 부인이 후일 대통령에 선출되긴 했지만... 지난해 말 프놈 태국 수상은 UN본부 방문차 뉴욕에 머무는 동안 본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해서 실각하고 만다. 최근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카이자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도 탈레반에게 밀려나서 십여년 뉴욕 프레쉬메
도우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근년에 복귀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많은 카사블랑카가 오늘날 뉴욕시티이다.

망명객의 도시 뉴욕은 한국의 현대사와도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 일제시대에 뉴욕은 하와이, 필라델피아와 더불어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특히 뉴욕에서는 당시 유일했던 한인교회인 ‘뉴욕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한국 망명객과 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었다. 해방 후 그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주역이 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그의 내각들, 그리고 그에게 도전했던 조병옥, 신익희 대통령 후보들이 뉴욕 출신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화를 이룬 두 주역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이 야당시절 각각 뉴욕에서 망명생활을 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은 정치체제를 기준으로 제 7공화국에 이르고 있다. 혁명과 정변을 통해서 정치체제가 바뀔 때마다 수많은 망명객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기게 된다. 구 체제의 인물은 새 질서에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담았던 구 체제를 위해서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정권교체를 전후해서 정치적 비밀이나 권력에 관련한 ‘파일’을 가진 사람은 ‘잠시 해외로’ 떠나있어야 하고, 그 결과 불귀의 망명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제 조국을 떠났누?’ 연도를 알면 대강 어느 정부를 위해서 일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는 계산법이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증인일지 모른다.이제 미국과 한국정부 사이에 비자협정이 체결되어서 내년부터 한국에서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재외동포 700만명 중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조국을 방문하기에 아직도 불편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사법적 이유이건, 정치적 이유이건 간에 그런 제약이 표면화 돼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이제 완전하게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이즈음 ‘과거사를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대 사면과 화해의 틀도 같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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