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정상회담’ 걱정된다

2007-08-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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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신문의 헤드라인이 어린 아이의 주먹만한 글자로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전하던 날, 뉴스에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아, 드디어 정상회담을 하는구나”에서부터 “뭐 해봤자 별 것 있겠나. 북한의 김정일이 누군데”라고 말하는가 하면 좀 예민한 사람은
“또 정치 쇼를 하는구나. 대선용이지 뭐겠어?”라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곳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분명히 역사적 사건이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두 나라, 그것도 긴장 대치상태에 있는 동족의 두 나라가 화해협력을 이루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이 많이 이루어져 착실한 성과를 이루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지금은 북핵문제 등 시급한 현안도 있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국민들의 성원 속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개떡 취급을 받는 회담이 되었을까.그 이유는 우선 때와 장소가 맞지 않는 회담이라는 데 있다. 대통령이 임기 말이 되면 이미 추
진해 오던 일도 일단 마무리를 하면서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특히 국가와 국민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중대한 일은 후임자에게 넘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임기 만료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노대통령이 꼭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것은 어떤 복선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사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고 북한이 북핵회담을 질질 끌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장소로 말하면 이번에 평양에서 또 회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난 2000년 1차 정상회담에서 남한이 평양에 갔을 때 북한은 김정일의 답방을 약속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한번 찾아갔으면 한번 찾아오는 것이 인사인데 두번이나 평양을 찾아가니 정상회담을 못해서 안달하는 모습처럼 비칠 수도 있다.

김정일의 신변안전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면 그런 걱정까지 해야 하는 정상회담을 해야 할 것인지를 묻고 싶다. “장소가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따진다면 그 말도 맞다. 그러나 장소에서부터 회담의 이니셔티브를 쥔 것으로 생각하는 그들이기에 하는 말이다.이렇게 어색한 정상회담을 굳이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노대통령은 단기적으로 대선 정국의 주도권을 되살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대선 정국에서 국민들로부터는 물론 여권에서도 관심 밖에 밀려나 있다. 그간 이런 구도를 깨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대연정이나 개헌 등 많은 시도를 해 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과 기발난 합의를 할 경우 이를 둘러싼 보수, 진보세력간 찬반 논쟁의 회오리 바람이 일게 될 것이다. 그의 특기는 판을 흔들어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고 이렇게 될 경우 좌익진보세력의 중심에 들어가 한편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현재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친북 좌익정책 기조를 공고히 해 놓자는 의도일 것이다. 지금 상태로 볼 때 오는 12월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만약 차기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김대중·노무현 2대에 걸친 친북 좌익정책은 일대 수정을 면키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과 더 밀착관계를 갖도록 합의함으로써 차기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발목을 묶어 두자는 속셈일 것이다. 그는 이미 두달 전 “전임 사장이 발행한 어음은 후임 사장이 결제해야 하는 것이다. 두달이 남았건, 세달이 남았건 내가 가서 도장 찍고 합의하면 후임자가 거부 못한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의도를 밝힌 적이 있다.

이런 정상회담을 김정일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남한에서 친북 좌익정권이 유지되는 것은 그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다. 이번 대선을 돕는 일이고 더구나 차기 정부의 발목까지 잡는 일이라면 김정일이 앞장서야 할 일이다. 아마 노대통령이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려고 할 것이
다. 더우기 남한과 화기애애하게 회담을 하면 미국을 속여먹을 수도 있으니 노대통령이나 김정일에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좥꿩 먹고 알 먹는 회담좦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회담에 놀아나야 하는 국민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국민들도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북풍에는 어지간히 단련이 되어 있어서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속이려고 드는데는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노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 기발난 생각과 튀는 행동, 막말까지 유명한 3관왕이 아닌가. 그가 김정일을 상대한다니 어린아이를 물가에 보내는 심정이고 불을 든 사람을 화약고에 들여보내는 심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고는 치지 말아야 할텐데…” 이런 걱정까지 국민들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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