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제 3의 이민

2007-08-08 (수)
크게 작게
여주영(논설위원)

우리가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이민의 첫 길이 아니다. 어디로부터인지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첫 번째의 이민이었고, 내가 살던 고국을 떠나 머나 먼 길을 택한 이국 행이 두 번째의 이민이었다. 또 세 번째의 이민은 이국땅에서 목숨이 다하여 숨을 거두고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처음의 이민은 그런대로 부모가 챙겨주어 별 걱정 없이 지냈지만 두 번째의 이민은 신발이 다 닳도록 뛰지 않으면 생활이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이민이었다. 그렇다면 세 번째의 이민은 뭐라고 해야 될까?

어디론가 우리가 가기는 가는데 그 가는 곳을 아무도 모른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말인즉, 천당 아니면 지옥, 혹은 연옥이라고도 하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거기에 가서 또 무엇을 할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인사회에서 부음소식이라 하면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민사회의 역사가 꽤 되고 보니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는 지인들의 수가 점점 늘어간다.
이제 앞으로 미국의 공동묘지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한인들이 모여 사는 플러싱이나 롱아일랜드, 맨하탄, 뉴저지 등지에 흘러넘치는 한인사회 모습처럼 세상을 하직하는 한인들의 수로 점차 넘칠 것이다. 묘비에는 이름이 새겨지고 또 언제 태어나 언제 이승을 떠났다는 기록과
더불어 또 다른 제 3의 이민촌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인생은 점점 더 짧다고 느껴진다. 처음 이민 올 땐 30대 파릇파릇하던 한인들이 이제는 어느덧 60에서 70세가 되는 나이들이 되었다. 지금은 이들이 아무리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언젠가는 하나 둘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일터, 그리고 죽기 살기로 일궈놓은 보금자리에서 그대로 아
무 것도 갖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 한 곳도 없었던 한인운영의 장의사가 한인사회에 하나 둘 늘어나고 장례 사업이 번창하는 것을
보면 한인들이 벌써 세상을 많이 떠났다는 증거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생을 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발자취로 가득 채울 수 있을까? 그 것은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제 3의 이민을 위해 우리가 준비를 철저히 했는가다.

지나간 건 할 수 없고 앞으로 다가올 생이라도 이제는 준비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길거나 짧거나 앞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어떤 사람은 1년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10년, 20년, 30년이 될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이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 제 3의 이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먼저 욕심을 버려야 한다.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문제는 바로 이런 욕심에서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보면 어떻게든 돈을 더 많이 벌기위해 애들을 쓴다.

요즘 사회는 권력이 높아도 제대로 쓸 줄을 모르고 또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돈을 어디다 어떻게 써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더 높은 권력을 추구하고 더 많은 돈을 취하려고 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욕심이지 야망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 3의 이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살아있는 동안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또 입으로는 사랑을 얘기하나 사랑의 실천은 말없는 가운데서 하는 것이지 떠들거나 남
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채근담에도 “사랑은 마음속에 있는데 그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이 입으로 나올 때가 그 사랑은 형상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랑은 말없는 가운데서 실천해야 사랑이 사랑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 깨닫고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말없이 실천해야 그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현이다. ‘사랑’이란 어느 사람의 마음에도 다 있다. 그래서 사실 실천하기도 크게 어렵지가 않다. 우리가 빈손 들고 이민 왔지만 단지 ‘노고’ 하나를 투자해 이민생활을 성공시키지 않았는가. 제 3의 이민생활에서도 성공의 길은 욕심 부리지 아니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그 것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바라는 인간의 본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본질을 떠나서 살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