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징기스칸 후예인 몽골과 오늘의 한국

2007-08-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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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1991년 냉전의 거대한 빙산이 녹으면서 소련권에 속했던 얼어붙었던 중앙아시아의 땅이 풀리고 있다. 또한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변신한 몽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안보, 전략 요충지로 천원 자원의 에너지 패권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강대국들의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에서 북으로 세시간 반 비행기로 날아가면 푸른 초원에 풀을 뜯고 있는 말과 양떼,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 이동주택인 하얀색의 둥근 천막인 젤(Gel)의 서정시와 같은 풍경의 몽골에 도착한다.요사이 인천공항에서 몽고로 매일 비행하는 비행기는 초만원이고 몽고의 수도에는 한국산 자동
차의 물결로 홍수를 이루고 한글 간판이 붙은 상점의 거리는 한국의 소도시를 연상케 한다. 한류가 몽골에 불어닥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놀라는 것은 몽고인들이 자신들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까맣게 잊고 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민족인가? 아니면 단일민족의 핏줄이라는 순혈주의 의식 속에 갇혀있기 때문일까? 몽골인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13세기 지구의 지축을 뒤흔들며 말을 타고 질주하며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사 최대의 영토인 유라시아 전역을 통치했던 장엄한 대서사시 같은 역사의 영웅, 징기스칸의 후예들이다.몽골인은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과 가장 많이 닮은 민족이다. 우리 민족의 인종학적 기원을 따지기 전에 그리 멀지 않은 고려시대를 재조명해 본다.

1231년부터 80년이나 몽골제국 왕조 원(元)나라 통치 하에 있던 고려 말의 왕들의 연대표를 보라! 충렬왕부터 마지막 고려왕 공민왕까지 원나라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였다. 고려는 무력한 원나라의 피지배국인 사위 나라였다. 혼혈인 왕으로 이어진 역대 고려 왕들의 어머니와 아내는 몽고 여인들이다.고려 왕들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유전자와 몽골반점은 지울 수 없는 숙명적인 각인이다. 왕실 뿐이 아니라 몽골로부터 거의 40년 동안 7번의 침략은 수십만의 몽고군에게 고려 여인들이 집단으로 유린 당했으며 이 때 혈통도 바꾸어 놓았다. 이 때 몽골인과의 혼혈로 신체성 유사성이
생긴 것이다.

명나라 출범 후 패망한 원나라가 몽골 초원으로 돌아간 마지막 왕 순제황제의 왕비 기황후는 고려에서 공녀로 끌려간 궁녀였다. 그녀는 비극적인 운명을 극적으로 역전시켜 황후가 된 고려 여인이다. 몽골 왕권의 계승은 고려 여인이 낳은 두 아들로 이어졌다.그 후 몰락한 징기스칸의 후예들은 광활한 몽골 초원에서 풀과 물을 따라서 이동하면서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하며 흐르는 동맥이었던 중앙아시아의 21세기 실크로드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정보화 시대는 휴대용 전화, 미니 노트북 등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빠른 속도와 이동성으로 지구촌을 누비고 다니는 디지털 유목민 시대로 들어선다. 말 고삐를 잡았던 몽골인의 손에 휴대폰이 쥐어질 것이다. 그들은 천막을 버리고 아파트 숲의 도시로 모이게 되고, 유목민과 정착민의 벽도 허물어질 것이다.한국과 언어의 뿌리가 같고 알타이 문화권이라는 동질성 때문에 몽골은 새로운 개척지의 땅이다. 징기스칸 후예인 몽골과 오늘의 한국은 긴 잠에서 깨어난 몽골의 광활한 땅의 천연자원과 한국의 자본, 기술의 결합의 공동체 동맹국으로 다시 손을 잡고 있다.

언젠가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철도가 연결되면 서울에서 노트북과 김밥을 싸들고 기차로 드넓은 몽고의 초원을 달리고 싶다.이름 모를 야생화가 가득히 핀 몽골 초원에는 원나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궁녀로 끌려갔던 수많은 고려 여인들의 유골도 묻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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