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문난 UN 한국음식 잔치

2007-08-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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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훼어필드 트레이딩)

아무데서나 간단히 먹을 점심식사이지만 지난 화요일은 모처럼 넥타이를 매고 이스트 강이 잔잔히 흐르는 전망 좋은 유엔 빌딩 내의 DDR 식당에서 200여 가지가 넘는 한국 궁중요리 음식 페스티발이 있다는 요란스러운 홍보에 감동되어 뉴욕생활 30여년이 넘어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유엔 빌딩을 찾았다.

삼중 사중의 삼엄한 보안검사대를 지나서 예약한 시간에 뷔페음식이 차려진 식당의 좌석에 자리잡고 앉을 때까지는 기대에 부풀었었다. 전망도 좋고 식당 분위기도 아늑하고 품위가 있었으나 차려진 식단을 둘러보고 실망이 앞섰다. 홍보 내용대로 하루에 200여 가지 내용을 다 차릴 수는 없을터이나 내가 갔던 날은(7월 24일) 차림표가 형편 없었다.


우선 한국 궁중음식이라면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신선로나 구절판이 있어야 하고 전통음식으로 삼색전과 삼색 나물 정도는 있어야 한식의 기본인데 그게 없으니 대중식당의 보통 메뉴였다.눈에 거슬린 몇 대목을 지적하면, 서양 채소를 썰어놓은 샐러드와 소스는 한국 전통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혹시 이 샐러드는 개화기에 고종황제가 궁중에서 먹었다고 한다면 이해가 갈 알이지만…

싸구려 중국식 ‘to go’ 음식같은 닭 튀김, 해물잡탕, 서양식 스프, 국적 불명의 국수 국물 맛, 후식 코스에 웬 서양 케이크가 서너 가지나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 음식 중 하나인 불고기도 없었고 식혜나 수정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식당 입구에 전시된 샘플 그릇도 크기들이 너무 작아 초라하고 쌀 튀각, 보리 튀각이 비닐로 포장된 과자 종류를 보고 주최측의 상식을 의심하였다. 삼성이나 LG가 세계의 전자시장을 석권하는 이 마당에 빈약하게 포장된 초라한 과자 부스러기 전시는 차라리 치워버렸으면 좋을 일이었다.

기계로 뻥 튀긴 쌀 튀각이나 보리튀각은 우리 전통이 아니고 일제 후에 들어온 튀김 방식이다. 전통 튀각은 찹쌀 벼의 낯알을 무쇠 솥에 볶으면 꽃잎처럼 하얗게 퍼져 맛도 고소하고 모양도 우아한 것이 우리 전통 튀밥이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들기름에 튀겨 조청이나 꿀을 바른 후 깨나 튀밥을 묻힌 산자 같은 것이 우리의 전통 과자다.

금년이 4회째나 되는 행사라니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있었을 터인데 주최측 기획이 너무나 소홀하고 성의가 없어 보인다. 그 날의 식객은 중국인 및 타민족 몇 그룹을 제외하면 거의가 고국을 사랑하는 현지 동포들이었다.유엔빌딩은 세계 각국의 사람이 모인 그곳에서 한국의 음식문화를 소개한다는 행사에 차려진 한국의 전통음식의 행사 치고는 너무나 부끄럽게 여겨진 엉터리 식단이었다.

앞으로도 이 좋은 기회를 더 계속하려면 차라리 음식값을 더 받더라도 제대로 갖추어진 메뉴로 필자같은 식도락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손색 없는 행사를 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원이 주최한 국가 공영기관의 행사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음식 판매가 아닐터인데 손익면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면(免)창피한 자랑스러운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충언역이(忠言逆耳) 이어행(以於行)이고 양약고구(良藥苦口) 이어병(以於病)이라고 좋은 충고는 귀에 거슬리나 행함에 좋고, 좋은 약이 입에 쓰나 병 치료에는 좋다는 옛말도 있다. 그 날의 음식 수준은 뉴욕 뉴저지 지역 격조있는 대형 한국식당의 뷔페 보다 훨씬 질과 양이 떨어진 수준 이하의 행사였다는 한인들의 공통된 불만을 내려오는 승강기 안에서 들었다.

그래도 그 날의 수확은 비록 관람료는 지불하였지만 6.25 전쟁 후 초등학교에서 우리를 공산괴뢰 마수의 위기에서 구해준 유엔에 관하여 새겨듣고 공부하였던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유엔총회장을 구경하고 자랑스러운 세계적 한국인 반기문 총장의 이름이 이곳 저곳 가이드들의 설명에서 들릴 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실망하였던 마음이 안위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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