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격적 선교

2007-08-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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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침 학교에 등교할 때마다 우리 꼬마 어린이들이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드리던 그 단군 할아버지의 목이 달아났습니다…”
1970년 후반 청주 ○○국민학교 교정에 세워졌던 국조 단군상의 머리가 무참히 파손된 사건이 있었다. 이 때 이 학교 여선생이 지방신문에 낸 기고문의 한 토막이다.할아버지 머리를 도끼로 내리친 범인은 학교 인근에 있는 기독교회 청년으로 밝혀졌다.(전국 일간신문에 보도). 기독교 신자인 내가 기독교 신자임을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근자에 들어와 한국 기독교 내에서 공격적 선교라는 목회자들의 설교가 무성하고 성가 또한 십자군을 찬양하는 군가형의 찬송이 인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후퇴요, 기독교의 암흑시대였던 중세로의 복고를 연상케 한다.물론 성지 회복이라는 대의명분도 있었다. 200년동안의 십자군전쟁(1095~1295)은 적극적 선교행위이다. 이교도, 특히 이슬람에 대한 무자비한 선교(?)는 이슬람으로 하여금 ‘지하드’라는 극한적인 방어 본능을 불태우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공격적 선교 행위인 십자군전쟁은 ‘밀고’만이 살 수 있다는 저 무시무시한 ‘마녀 사냥’이라는 기독교 내란의 원인이기도 하다. 250년(13세기~) 동안 계속된 마녀 사냥이라는 기독교인 서로 죽이기 살인극을 종식시킨 것은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신비주의에 도전한 ‘계몽사상’이었다는 사실에 오늘의 기독교, 특히 공격적인 선교주의자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배타적 공격성은 주기적으로 발작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60,70년대 새마을운동이 조선 어머니의 젖가슴과도 같은 초가집 씨를 말리고 돌아갈 때 여기에 편승한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주의자들이 ‘미신 타파’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시골 산간벽지를 휘젓고 다니면서 이 땅의 토속신앙 성황당을 뭉개버리고 그 곳에 십자가를 세워놓고 집안의 행복을 염원하던 부뚜막 정한수 그릇 박살내고 그 자리에 십자가 그려놓고 심지어 시골집 안방까지 쳐들어가 군대에 끌려간 삼대 독자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고 붙여놓은 ‘부적’을 뜯어 불살라 버렸다.

나는 이 기독 홍위병 같은 사건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내 말을 땅 끝까지 가서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 기독교 신자에게는 신자로서 으뜸가는 소명으로 알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문제는 선교 행위이다. 해병대 뒤따라 상륙하는 선교사, 원조물자 묻어가는 십자가 식의 선교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기에는 이름하여 이교도들이, 무신자들이 너무 깨었고 똑똑하다. 배탈 난 이교도에게 소화제 주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그 약이 기독교의 은혜라 하면 손가락 목구멍에 넣고 토해버리는 수모를 감수하여야 할 것이다.

선교는 강요가 아닌 나 자신을 불태우는 ‘촛불’이어야 한다. 불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선교의 폭은 넓어진다. 그리고 모여든다.선교 한답시고 낚시밥을 던지지 말라. 투망질을 하지 말라. 찍어대는 작살짓은 더더욱 하지 말라. 순수한 봉사활동으로 나를 불태우는 촛불이 되라. 그러면 예수님 품안으로 구름같이 모여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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