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한 가정의 특성

2007-07-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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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뉴욕가정상담소 가정폭력 상담가)

신혼인 친구가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싸울 때 마다 전화를 하더니 지난 주말에는 아예 타주에서 뉴욕까지 쫓아와 자초지종을 털어놓는다. 신혼인 터라 어느 정도의 다툼은 수순이겠거니 했으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툼이 심해지면 모욕적인 언행도 모자라 손까지 드는 친구 남편 때문이다. 더욱 가관은 남편의 태도였다. ‘내가 손을 드는 건 네가 맞을만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안나오게 해봐라’고 반응을 한단다.

필자는 그 부부를 연애시절부터 봐왔던 터라 그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정을 꾸렸다는 데에는 의심이 없다. 그러나 사랑으로 시작한 가정이라 해도 그런 식의 화풀이를 반복해서는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다. 가정은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결혼한 뒤 아이만 낳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은 사랑을 통해 성숙을 도모할 수 있는 집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조건없는 사랑’이라는 가족만의 특수성을 은연중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렇게나 대해도 떠날 수 없고 여전히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아무렇게나’는 신체적 폭행 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주는 언어부터 정도가 지나친 의심과 질투, 미행 등의 행동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대개 한국 가정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이해와 관용을 미덕으로 삼기 때문에, 위와 같은 행동을 문제삼으면 까다롭거나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화를 다스리지 못해 시작된 분풀이는 점차 강도를 더해가게 마련이다. 분명 부당한 행동인데도 눈감고 지나치다보면 이는 급기야 가정폭력으로 발전해버리기도 한다. 이쯤이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상처를 입고 끝나기 쉽다. 행여 ‘폭력’이라는 단어 때문에 자신의 일이 아닐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선 곤란하다. 우리 가족은 사이가 좋기 때문에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방관하는 것도 잘못된 시각이다. 사회는 결국 가정이라는 단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가정의 폐해는 언젠가 간접적으로라도 모두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가정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가정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건강한 가정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첫번째는 가정의 일을 최우선으로 두고 처리하는 특성이다. 밖의 일이 아무리 바빠도 가정사에 소홀해선 안된다는 철두철미한 마음가짐이 행복한 가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건강한 가족은 함께하는 시간을 내려고 노력한다. 때로 자신의 취미생활이나 쉬고 싶은 욕심이 앞서기도 할 것이다. 이럴 땐 가족 구성원들이 원하는 가족의 미래상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 이 장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잠시 단기 욕구를 뒤로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서로 상기시키는 것이다.

항상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습성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가족은 어색하더라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연구하고 실천한다고 입을 모은다.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서로의 감정을 자유롭게 이해하고 인정하는 습관과 아울러 동일한 종교를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건강한 가정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 중 하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비난하거나 서로를 탓하기 보다 문제를 일단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문제 해결 시에도 여러 시각에서 접근하도록 의식적으로 토론하고 노력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이런 노력없이 돈만 벌어오면 가정이 알아서 돌아가겠거니 기대하는 것은 다툼의 씨앗이 된다. 이런 잦은 다툼이 바로 가정 폭력의 전조인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도 보통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고, 더군다나 부모와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의 대부분을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가정폭력의 방관이 치명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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