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2007-07-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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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예수를 모함하기 위하여 어느날 바리새인들은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와서 예수에게 묻기를 “모세 율법에는 이런 여인은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합니까?”라고 다그쳤다.

한참 침묵하고 있던 예수가 이르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 말에도 “털어 먼지 안 날 자 없다”고들 말하지 않는가?이 세상 사람들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이 옳고 깨끗하고 정당한 것처럼 남을 헐뜯고 비방하며 짓밟는 일을 예사로 자행하는 일들을 볼 때 마음이 답답하고 슬퍼지기까지 한다.


오늘날 소위 세계화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편협한 사고방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잠재의식을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마구 휘둘러대는 생활 패턴은 우리들만의 고질병으로서 수치감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그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들의 일상용어
부터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언어 구사도 거의가 명령조이고 타협할 줄 모르는 타도 일변도인 것이다.
우리는 외래어를 배우면서 흔히 느끼는 일이지만 서구의 언어 구성은 선택적이고 타협적이며 공동의 유대의식 같은 것이 언어 속에 배어있음을 느낀다. 예컨대 “Maybe” “I hope so” “Would you like…” 등은 그들의 일상에서 귀가 아프도록 듣는 말이다.

더우기 가정법 같은 형식이 많이 발달해 있는 것을 보면 타협의 여지가 언제나 여운처럼 풍겨주고 있다. 언제든지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전제를 놓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정치인들의 기자회견을 보아도 비록 심각한 얘기일 망정 그 분위기는 유쾌하고 담백하다.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이 중동사태가 급박할 때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기자가 제 1문을 던졌다.
“장관, 박사, 교수 등등 키신저에 대한 호칭이 많은데 어느 호칭이 제일 마음에 드느냐” 이 질문에 대하여 키신저는 “기왕이면 각하라고 불러주지 그래!”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영국 의회의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얘기할 때 인용되는 한 일화가 있다. A라는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는데 B라는 의원이 야유를 했다. “수의사의 아들이시여, 그만 좀 떠들고 앉으시지!” A의원은 그 말을 받아서 “당신은 어서 나의 부친을 찾아 가봐야겠소!”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남을 정면으로 매도하지도 않으며 면전에 쏴붙이는 힐책도 삼간다. 그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호호야(好好爺)이겠는가? 기왕이면 유머와 우회와 상호존중의 화술을 구사할 것 같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요즘 모국에서의 화제의 탑 기사는 대선 입후보자들간의 치열한 싸움이다. 더우기 같은 정당의 멤버로서 한 식구와 같은 이씨와 박씨의 공방전은 목불인견인 것이다. 국민 앞에 용납할 수 없는 비리가 있다면 진작에 밝힐 일이지 왜 하필이면 대선을 앞두고서 철천지 원수지간처럼 까발리고 들춰내서 만천하에 떠들어 망신을 주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적어도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나라를 대표할 인물이라면 남을 헐뜯고 매장시키는 일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남의 약점을 덮어줄 줄 아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매스컴에 보면 두 후보자들의 신상명세가 나오는데 중고등학교와 대학 때의 성적들과 IQ까지 밝혀지고 있는데 대통령의 자격 기준이 어찌 그런 것에 구애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학교 성적의 우등생이 곧 사회생활의 우등생이 아닐 것이며 나랏님께서 아이큐가 높고 박식하다면 그것은 금상첨화격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가(선거 풍토)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추락되었는지 안타깝게 여겨진다.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흑백 택일의 사고방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강박관념만 조성시킬 뿐이다. 그같은 아집의 논리가 오늘의 정치를 이루어가고 있으며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현실은 더욱 초조하고 불안해지기만 한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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