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충동 구매

2007-07-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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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훼어필드 트레이딩)

호기심이 발동하여 지난해 모 한인 여행사를 통하여 캐나다 록키산맥을 연결하는 코스를 다녀왔다. 언론에서 극찬하고 인터넷에 아무리 좋은 정보가 떠돌아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맛으로 우리는 여행지를 찾는다.
비디오를 빌려다 보면 세계 유명지 관광은 앉아서 돈 안들이고 구경하는데 뭐하러 비싼 관광여행을 가느냐고 비방하던 구두쇠 노인도 마음을 바꾸어 미국까지 여행 온 한국의 어떤 지인을 본 적도 있다.

눈 먼 강아지가 앞서가는 말방울 소리만 듣고 따라가듯이 가이드의 안내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구경이 단체관광이라 가이드의 말 한마디에 여행객은 일희(一喜) 일소(一笑)한다. 시간이 지나 낯이 익고 가이드와 정이 들어가면 그 고장의 명산품 설명과 함께 대체약품, 건강식품의 효능이 과대포장되어 특히 마음 약한 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윽고 설명한 건강식품 파는 곳에 도착하면 동서양 공히 대체의약품을 파는 업소는 판매원이 하얀 가운을 입고 손님을 맞는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 의료인들이 가운을 입고 권위와 신뢰를 나타내던 그 식으로 하얀 가운에 흰 장갑을 낀 판매원이 등장하고, 그의 신분은 본 제품회사의 고위 연구원으로 이번 여행객을 위하여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먼 곳에 와 주셔 강의하심을 행운으로 여기라며 일행을 의자에 앉힌 후 갖가지 통계자료가 등장하고 온갖 효능이 나열된 설명은 끝난다.


일행 중 어떤 분은 행여 그 제품이 품절될까 염려하여 맨먼저 앞서 나가 테이블에 놓인 물건을 두 팔로 쓸어 자기 몫을 확보하는 성급한 손님도 있고, 아들 딸 손자가 쥐어준 용돈을 꺼내어 계산을 맞추는 노인도 있다. 나이 들면 나타나는 성인병 증세로 내과, 외과, 피부과 등 만병에 효과가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피로에 지친 나이 드신 어른들은 마음이 동한다.
흥미있는 사실은 대개 젊은층은 외면하고 슬며시 자리를 뜬다.

여행일정 중 두 세군데 선물가게를 들리고 버스에 올라 좌석에 앉고나면 이곳 저곳에서 내외간에 불평이 쏟아진다. “여보, 전번에 중국에 가서 천달러 넘게 주고 사온 보약 먹지도 않고 버리더니 또 기어이 샀구려” “아무리 귀한 석청 꿀이라지만 1kg에 100달러 씩이나 주고 다섯 통이나 사다니...”

이 어색한 분위기를 재치있는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고 본업으로 들어간다. 옵션 신청에 참가자가 적으면 가이드는 흥이 떨어지고 신명이 죽지만 노련하고 경험 많은 이는 이 상황을 잘 비켜간다.모스크바 관광을 갔을 적에 마침 한국에서 유학와서 파트타임으로 가이드를 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순진한 그는 기념품점을 안내하며 여기서 여러분이 선물을 사면 저는 몇 퍼센트를 사례로 받으니 필요한 선물은 여기서 많이 사주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안내에 일행은 거부반응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샤핑을 한 적도 있었다.

억어와 악어새 같은 관광안내와 기념품점 안내는 나무랄 일도 아니다. 출발 전에 예산과 범위를 잘 잡아 마음을 절제하면 충동구매에 휩쓸리지도 않고 가이드를 원망할 일도 없다. 관광버스가 모이는 휴게소에서 어느 가이드들끼리 주고 받는 농담을 옆에서 곁들여 들은 적이 있다. “가이드는 왕이고 손님은 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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