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쟁 문화

2007-07-14 (토)
크게 작게
백춘기(골동품 복원가)

1963년 6월 25일, 강원도 속초국민학교 5학년 1반 국어시간.
-선생님 “오늘이 오랑캐 공산군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온 6.25전쟁 기념일이다”
-철수 “그래서 싸움은 누가 이겼어요?”
-선생님 “53년 7월 27일 휴전했다”
-철수 “휴전이 뭐예요?”
-선생님 “이×아, 휴전도 몰라? 서로 비겼다는 뜻이지”
-철수 “비겼으면 한번 더 붙어야 겠네요”
다음 날, 선생님은 모처에 끌려갔고 그 후 선생님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이것은 당시 많은 사람을 당혹케 한 실화이다.

금년으로 휴전 57년, 그 때의 철수씨가 오늘에 생존해 있다면 무슨 질문을 던질까? 참으로 궁금하다.조국의 교육부에서 그동안 6.25사변, 6.25동란, 한국전쟁 등 산만하게 불리던 호칭을 6.25전쟁으로 통일해 쓰도록 국민의 협조를 구한다고 한다(6.1.한국).


57년 동안 혼란스럽게 끌어온 전쟁 명칭 문제는 6.25전쟁으로 매듭을 짓고… 그러면 철수가 그렇게 궁금했던 비긴 ‘휴전’ 문제는 언제 어떻게 매듭을 지을 것인가!철수 말대로 ‘다시 붙는다면’ 남북 모두 끝장이라는 것은 서울, 평양 할 것 없이 한반도의 강아지 한 마리까지 잘 알고 있다.한반도 비극의 원죄는 이브의 사과가 아니라 바로 38선이다. 해방 공간에서 민족 지도자들이 슬기롭게 잘만 대처했더라면 황소가 끄는 쟁기 정도로도 밀어버렸을 38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소폭탄을 가지고도 무너뜨리기 힘든 장벽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조국인 어머니의 허리를 두 동강이 낸 휴전선은 무너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문제는 57년 동안 끌어온 6.25 전쟁을 철수 말대로 다시 붙지 않고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데 있다.쓸개 빠진 인간이 아닌 이상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이 엄청난 민족상쟁! 그리고 비극! 이 고통은 6.25 세대에서 사생결단, 끝장을 냈어야 했다. 이렇게 세습적 민족 비극으로 이어갈 문제가 아니다.

전투만 있고 전쟁문화가 없는 6.25전쟁! 멸공 북진통일이라는 실용적 국시 속에서 전쟁문화는 숨을 죽이고 질식해 갔다. 민족상쟁으로 야기된 인간간의 앙심을 화해시키는 길은 문화가 있을 뿐이다. 6.25 전쟁을 6.25 전쟁문화로 승화, 발전시켜야 한다. 6.25 전쟁 속에는 노벨문학상을 휩쓸만한 소재가 너무 너무 풍부하다. 이것을 용공으로 매도하지 말라! 그 때는 한류도 끝장이다.같은 내전인데 미국 남북전쟁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있지 않은가. 스페인 전쟁에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있고 러시아 내전에는 ‘닥터 지바고’가 있다. 그리고 1,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지상에서 영원으로’ ‘젊은 사자들’... 얼마나 많은 소설, 영화 등이 있지 않은가.

조국이 민주화 된 이후 많은 전쟁문화 작품이 나왔다. 이것은 새 발의 피다. 오뉴월 장마철에 장대비 쏟아지듯 6.25 문학작품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 때 6.25 전쟁의 종말을 고하는 휴전선은 무너진다. 마치 베를린 장벽과도 같이.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