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즐기면 ‘문화’ 남이 즐기면 ‘야만’

2007-07-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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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한민족포럼재단)

한국인의 보신탕 문화를 비판해 온 여배우 출신의 프랑스 동물보호운동가인 브리짓 바르도가 이번에는 이집트 정부에 ‘개의 권리보장’을 촉구하고 나서 이집트인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생활고에 허덕이는 저소득층 이집트인들은 개의 권리에 신경쓰기 전에 자신들의 비참한 삶에 관심을 가져달라며 바르도를 조롱하고 있다.

바르도의 이집트 발언은 무더위가 시작되는 소서(小署)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보신탕 철이기에 특히 우리 한국인들의 관심을 끈다. 게다가 이곳 미국에서도 몇년 전 워너브라더스의 채널 11(WB11)의 ‘사람이 개를 문다’는 보도를 통해 한인사회의 개고기 식용문화를 ‘왜곡’ 보도하여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어 더욱 그런 것 같다.필자가 바르도의 발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개고기의 식용 문제에 대해 다시 시시비비를 가리
려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곳 미국에서 대다수 일반인들이 개고기 식용을 혐오하고 있는 터라, 새삼 이 문제를 거론할 생각은 더욱 없다. 하지만 자신의 관점으로 타인의 문화를 재단하고 비판하려는 사람들의 천박한 사고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갈까 생각한다.


특별히 동물보호 운동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바르도가 있는 프랑스의 음식문화는 어떠한가. 프랑스어로 ‘기름진 간(肝)’을 뜻하는 ‘푸아그라(foie gras)’는 ‘철갑상어 알(caviar)’ ‘송로버섯(truffle)’과 함게 서양 3대 진미에 꼽히는 최고급 요리 재료다. 기름지면서 부드럽고 씹힐듯 입안에 녹아드는 육질이 일품이라고 미식가들은 말한다. 문제는 지방이 잔뜩 끼어 비대해진 지방간 푸아그라를 얻으려고 거위와 오리를 끔찍하게 학대한다는 것이다.푸아그라 농장에선 부리에 깔때기를 물리거나 금속관을 목 깊숙히 찔러넣고 다짜고짜 옥수수와 콩을 붓는다. 헐떡이는 거위의 목을 손으로 훑어내리며 터지도록 먹인다. 하루 2~3차례, 보름에
서 한달을 먹이면 영양 과잉으로 간이 12배까지 커진다. 이 과정에서 거위와 오리는 도축될 때까지 지방간으로 뇌와 내장이 망가지는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EU는 2010년까지 생산 방식을 바꾸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토록 동물을 학대하고 있는데도 프랑스 의회가 지난해 푸아그라를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냈다. 물론 전 유럽 언론들이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한 해 세계 생산량 약 3,000만개 가운데 80% 넘게 차지하는 프랑스로서는 세계적인 반(反)푸아그라 운동을 피해갈 구실을 만들려는 심산임이 틀림없다.그런데도 바르도는 애완견과 식용견의 사육과 유통이 분명하게 분리돼 있는 한국을 무조건 야만 국가로 매도하면서, 푸아그라는 ‘문화’이고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자국 프랑스의 동물학대를 보지 못하고 이제는 이집트에서까지 개의 권리문제를 들고 나온 바르도의 근시안적인 두 얼굴이 가엾어 보인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언어 다음으로 음식문화를 꼽고 있다. 우리의 ‘보신탕’은 가장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음식문화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한인동포 200여만명이 살고 있는 이곳 미국에서 우리의 고유음식인 보신탕 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화적 편견에 따른 피해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브리짓 바르도는 프랑스가 배출한 세계적인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슬픈 열대’에
서 일깨워 준 ‘식인 풍습은 야만적인 게 아니라 그 사회의 존중해야 할 생활방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동물 보호라는 명분으로 전세계를 향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웃음거리를 더 이상 만들지 말고 자국 프랑스의 야만적인 동물 학대 행위에 더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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