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노대통령, 말조심 하시요”

2007-07-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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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사람은 자기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한 평가를 받고 책임을 진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말로서 큰 덕을 볼 수도 있지만 말을 잘못해서 설화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늘 하는 말이 쌓이고 쌓여 그 사람 자체를 형성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막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그가 한 인간으로서, 또 정치인으로서 어떤 능력은 있겠지만 그의 말로 보아 잘 교육을 받아서 교양을 갖춘 인품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아량을 보이거나 남을 포용하기 보다는 남의 아픈 데를 콕콕 찔러 자신에게 굴복시키려고 하고 남의 장점을 부각시켜주기 보다는 남의 약점을 후벼파서 깎아 내리고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인다.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게 되면 여러 사람들의 눈총 때문에 말을 삼가에 되련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정치인도 사람인지라 말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도 있겠지만 그의 말은 실수가 아니다. 실수란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가 눈을 떠서 입을 열었다 하면 나오는 말이 그런 말이니 실수가 아니라 버릇인 것이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그의 이런 막말이 후보들을 때리다가 선관위에서 3번이나 경고를 받았다. 선관위가 현직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가혹한 처분을 할 수 없었으니 경고이지 하고 싶은대로 했다면 선거법 위반으로 결정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자 청와대는 지난달 29일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는 발언내용을 선관위에 제출하면서 “이런 말을 해도 되나요” 하고 질의했다. 선관위는 발언 내용의 사전 질의에 대해 회답한 선례가 없다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대통령이 선관위에 “이런 말을 해도 되나요”라고 물어본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통 이런 질문은 어떤 문제에 대해 말을 해야 하는데 자기의 의견에 자신이 없거나 전문지식이 없을 때 남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 그것도 법조인 출신으로 조직상 수많은 전문가의 자문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어린아이나 저능아 같은 질문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3번이나 옐로우 카드를 준 선관위와 선관위의 결정을 마음속으로 지지한 국민들을 빈정댄 질문이라는 느낌이 짙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술을 더 떠서 청와대가 지난 11일 그 질문 내용을 공개했다. 발표 내용이 신문에 상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이명박 후보가 청와대 공작설을 제기한 것은 국민을 속이려는 야비한 정치공작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그런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공개로 노대통령은 직접 발언을 하지 않고 하려던 말을 모두 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도둑놈이라고 말하겠나”고 말했다면 그는 분명히 그 사람을 도둑놈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도둑놈이라는 내용은 이미 전달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발언하려고 했던 내용이 공개된 것은 그가 발언한 것이나 다름 없이 그의 의사
가 밝혀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이 “새로운 방식의 선거법 위반”이라고 비난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노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여권에서 누가 후보가 되든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과의 싸움은 힘겨운 싸움이 되는데 박근혜 후보에 비해 중도세력의 지지가 큰 이명박 후보가 더 힘든 상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이명박 후보의 경선 승리를 저지하는 것이 1차 목표가 되었을 것이다.그러나 그가 대통령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한다면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누가 대통령 자격이 있고 없고는 현직 대통령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결정한다. 누구든지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노대통령은 과연 대통령 자격이 있을까. 지금 자천타천으로 60여명이 대통령의 꿈을 꾸고 있다고 하여 비웃음까지 사고 있지만 노대통령도 한 대통령을 그 누구는 할 수 없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말해서 노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말 조심을 해야 한다. 아무리 말버릇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버릇을 끝까지 관대하게 보아줄 사람은 없다. 어떤 정략적 목적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남을 헐뜯고 막말로 자극을 주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그 말로 인한 화가 그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필자가 도사는 아니지만 세상의 이치가 그런 것이니 어찌하랴. 재앙의 문을 조심하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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