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본국 참정권의 양면성

2007-07-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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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해외거주 한인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는 길이 열리자 280여 만명(미주 지역 130만명)의 재외국민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제 미국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외국에 살면서도 내 국적을 갖고 사는 기분, 즉 자긍심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됐다.

한 나라의 국민이면 어디 가서 살든지, 참정권이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므로 참정권 실시는 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딜 가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고, 또 자긍심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참정권부여가 반가우
면서도 우려되는 것은 미국에 살면 미국정치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 자칫해서 한국정치에만 관심을 기울일까 그 것이 문제이다.


물론 참정권이 있게 되면 한국사람들이 여기 와서 선거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투표할 사람 80만이라는 숫자는 선거의 당락을 얼마든지 좌우할 수 있는 파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경우 미국정치에는 무관심하면서 한국정치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 균형감 없는 사고와 행태를 보이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자신이 사는 미국에서는 정치적으로 입지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한국정치만 바라보
는 기형적 인사들이 준동할까 걱정이다. 누구 누구 후원회 하는 한국정치의 정치단체가 여기 저기 생겨서 아예 미국정치는 내팽개쳐 두고 한국정치만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한국정치권에서 해외 동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나쁠 것은 없다. 해외에서 여러 경험을 한 사람들이 본국 정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선거자금이 들어오고 후원금도 들어오고 하면 해외동포의 여러 측면이 힘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을 본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참정권을 환영한다면 그건 넌센스다. 그러한 정성과 관심을 차라리 우리가 사는 미국정부에다 쏟는다면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뉴욕한인 YWCA, 뉴욕가정 상담소, 가정문제 연구소 외에 한인봉사센터 같은 단체는 많은 지원금을 미국정부로부터 받지만 그 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경험과 지혜를 모아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정부로부터 타내야 할 것이다.

어느 기사에 보니 미국의 재단에서 주는 아시안에 대한 지원금이 미국전체에서 4%라고 한다. 그런데 비해 유대인이나 다른 민족들은 어마어마한 지원금을 받는다. 그래서 참정권부여의 의미를 엉뚱한 다른 데에 두지 말고 재외동포들은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고, 현재 살고 있는 커뮤
니티 속에서 자신의 일과 발전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도 무슨 무슨 단체장만 되면 자신에게 주어진 본연의 임무에는 관심도 없이 뻔질나게 공항을 출입하며 본국정치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개인의 정치적 발전을 위해서 커뮤니티 단체장을 맡긴 것이 아니지 않는가? 본국 참정권이 확대되면 앞
으로 별별 사람들이 다 미국 명함 들고 한국정가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참정권의 부여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앞으로는 이중국적 까지도 허용이 돼야 한다. 이중국적은 이미 10년 전부터 여러 차례 주장돼 왔는데 아직도 재외국민 당사자에게는 생소한 점이 있다. 말하자면 이중국적을 가질 경우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아이덴티티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2중, 3중, 심지어 4중까지 국적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다국적 시민권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의 정의를 만일 국토 내에 사는 사람으로 제한한다면 이는 전 근대적이다. 지구촌시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국민의 정의는 확장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국토 안에서 사는 사람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될 수 있다. 우물 밖의 개구리는 개구리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이상하다.
한국인은 어디 살더라도 한국인이라는 본질을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 것을 법으로 제한해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것이다. 재외동포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 주는 이번 조치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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