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대선후보들의 트로피 아내

2007-06-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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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찬란한 별빛이 쏟아지는 어느 해 여름 밤, 친구 집의 정원 잔디밭에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 선거 캠페인 모금 파티가 열렸다. 나는 우연히도 그의 두번째 부인이 세련되고 우아한 핸오버(Hanover)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녀는 종달새와 같은 맑은 목소리로 재치있게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어갔다. 그녀는 오랜 친구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아버지인 줄리아니가 캠페인 연설을 하는 동안 8살인 아들 앤드류는 풀밭 위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잡으려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녔다.

커다란 금발의 인형을 안고 있는 5살의 딸 캐롤라인은 비단실 같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동화 속의 어린 공주 같았다. 무엇인가 귓속말로 속삭이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이들 줄리아니 부부는 달콤한 행복에 젖어있어 보였다.눈부신 미래가 약속된 의욕이 넘치는 한 정치인의 가족의 풍경은 환상적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러나 잔인한 세월은 사람들의 가슴에 흠집을 내고 할퀴며 흘러간다. 이제 21살이 된 대학생인 아들 앤드류와 금년 가을 하버드대학에 입학하는 딸 18살의 캐롤라인은 아버지와 대화의 단절이 되어있고 공식적으로 아버지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세상을 움켜 쥐고 흔드는 카리스마를 지닌 유능한 정치인이지만 자식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아버지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훈련과 수업을 마치고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버지 역할을 하다 보면 아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있다.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미국의 대선 바람의 돌풍과 함께 2008년 공화당 대통령 대선 후보들의 사생활이 파헤쳐지고 있다.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존 매케인 상원의원,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그리고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르는 프레드 톰슨 등의 대선 후보들의 결혼생활은 공통점이 있다.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70대 초반이고 대부분의 후보들은 60대인데 모두 조강지처(?)를 버리고 이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공한 유능한 정치인으로 힘든 경주에서 승리한 뒤에 트로피를 받듯이 자신보다 젊고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트로피 아내(Trophy Wife)를 쟁취하였다. NBC에서 방영되는 범죄 드라마 인기 미니 시리즈인 ‘법과 질서’에서 뉴욕주 검사로 출연하였던 플레드 톰슨의 현재 아내는 25살 연하이고 워싱턴에서 왕성한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변호사이다. 또한 그들의 가족 형태는 이혼과 재혼으로 이어지면서 전 남편의 소생, 전 부인의 소생, 입양아인 비 혈연 아이들과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가정 형태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 자신을 다스린 후 나라 일을 통치하라는 낡은 윤리는 아득한 전설 같은 이야기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이혼, 불륜, 재혼으로 이어진 경력을 가진 대선 후보들의 사생활에 혐오감이나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오랫동안 동양사회의 기본적 도덕 윤리로 깊이 뿌리박혀 있는 삼강오륜도 빛이 바랜 사진처럼 현실감이 멀다.미래의 가족 형태는 가장인 아버지의 큰 나무 그늘에서 수직관계를 이어왔던 전통적인 가족 개념도 사라지고 구심점도 잃어갈 것이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비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 늘어날 것이다.앞으로는 가족의 구성원은 함께 모여 사는 클럽의 회원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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