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모크레스의 칼

2007-06-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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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시실리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왕 데이오니시우스의 신하 가운데 다모크레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왕에게 영합하기 위해서 언제나 왕의 행복함을 찬양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다모크레스에게 말하기를 “네가 항상 부러워하는 왕의 자리에 하루 동안만 앉아 보아라”고 했다.
다모크레스는 뜻밖의 왕의 호의에 감격해 하며 왕좌에 앉았다. 눈앞에는 산해진미가 그득히 차려져 있었고, 만조백관들이 머리를 숙이고 하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이건 왕이 말하는 것이면 그대로 이루어졌다. 정말 왕이란 한 번 해볼 만한 것이라고 어깨가 으쓱해 졌다.

그리하여 여기 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문득 천정을 쳐다보니 머리 위에 날카로운 칼이 한 가닥 머리카락에 매달려 늘어져 예리한 칼 끝이 정수리 가까이에 드리워져 있었다. 왕좌에 앉아서 가슴 벅차 하던 다모크레스의 감격은 금시 공포로 변했고, 황홀하기만 하던 왕좌가 갑자기 가시방석처럼 느껴져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이 전설은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의 자리란 결코 겉 보기처럼 화려하고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항상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민속학자 프레이저(James Frazer, 1877~1957)의 명저 ‘황금의 가지’ 중에 나오는 ‘죽음의 숲에 있는 사제’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것이었다.


‘죽음의 숲’은 금단의 지역이다. 그곳으로 도망쳐 들어간 노예는 노예 신분을 벗어날 수 있다. 다만 그곳에는 전에 노예였던 ‘죽음의 숲에 있는 사제’가 있다. 뒤에 들어온 노예는 그 사제를 죽이고 자신이 대신 사제가 되지 않으면 숲속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권력의 자리를 에워싸고 벌어지는 피투성이의 투쟁을 상징하는 끔찍스런 예화인 것이다.이같은 일은 비단 정치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스포츠의 챔피언이 그렇고, 연예계의 스타 자리가 다 하나같이 ‘죽음의 숲에 있는 사제’이며 그의 머리 위에는 항상 예리한 칼끝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찌기 존 케네디(John F. Kennedy)는 그의 연설 가운데서 핵무기를 두고 “인류에 있어서의 다모크레스의 칼”이라고 했는데 이는 인류의 운명이 핵무기를 폭발시키는 단추 하나에 달려있다는 뜻으로 그 위험도를 말한 것이다. 비록 케네디 자신은 핵무기와는 인연이 먼 한 발의 총알로 비극의 최후를 마쳤지만 여전히 왕좌나 대통령의 권좌는 다모크레스의 칼끝이 드리워져 있음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권좌를 지나치게 탐내는 일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란 말인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요즘 고국에서는 후보자들 간에 꼴사나운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 체면이 어찌 될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다.현직 대통령이란 사람이 된 소리 안된 소리 분간하지 않고 되는대로 마구 내뱉는 말의 횡포 때문에 온 국민들이 어이없어 하는 판국인데 이는 다모크레스의 칼끝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한 처
사라 하겠다. 그래서 걸핏하면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말을 서슴치 않을 바에는 차라리 말만 내세울 게 아니라 조용히 물러날 것 같으면 나름대로 존경을 받을 것이 아니겠는가?

차제에 모든 국민들은 차원 낮은 대통령만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권리 행사를 잘못한 일에 대한 자책감을 가지고 차후부터는 정신을 차려 후회함이 없는 투표권 행사를 하기 바란다. 대통령 후보들은 권좌의 이면에 항상 무서운 다모크레스의 칼끝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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