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퇴계와 율곡

2007-06-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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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아트갤러리)

“의관을 바르게 하고, 눈매를 존엄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가지고 있기를 마치 상제를 대하듯 하라.발 가짐은 무겁게 할 것이며, 손 가짐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여야 하니, 땅은 가려서 밟아, 개미집 두덩까지도 밟지 말고 돌아서 가라.문을 나설 때는 손님을 뵙듯 해야 하며, 일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조심 조심하여 혹시라도 안이하게 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고, 잡념 막기를 성곽과 같이 하여 성실하고 진실하게 조금도 경솔함이 없도록 하라”

퇴계 ‘성학십도’ 아홉번째 경재잠(敬齎箴)에서 나오는 글이다.
우리 옛 선비들의 대쪽같은 절개와 품위가 위의 글만 보아도 눈앞에 그 모습이 환하게 그려진다.노학자 퇴계는 68세 때 17세 어린 왕 선조를 가르치기 위해 ‘성학십도’를 그려 아침 저녁 벽에 붙여두고 읽으라고 말하셨다.우리의 옛 선비들은 몸가짐(품행)을 바르게 한 후 그 위에 지식을 터득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몸과 마음이 바르지 않은 곳에 많은 지식만을 쌓으려는 교육방법은 마치 기초공사 없이 화려한 빌딩을 높이만 올리려고 하는 꼴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반드시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아니, 사고가 터졌는데도 그 원인을 다른 곳으로 촛점을 맞춘다.율곡이 퇴계보다 35년 후의 학자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 시대는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가 한층 심하였고 백성들의 삶은 곤고했고, 궁중과 권간들의 삶은 사치스러웠다.
아래의 글은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부분, ‘율곡전서’에서 뽑은 안재순의 박사 논문 중 일부이다.

“근래에 정치가 문란하고 관리들의 수탈이 가혹하여 각종 부역이 번중한 데다 기근이 거듭 들고 전염병이 계속 일어나니 젊은이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약자는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며 큰 소리로 울부짖는 백성들은 저 물 위의 뜬 풀과 같아서 고을과 마을이 모두 비었고 밭과 들은 황무지로 되었으며 백리 안에서는 인가의 연기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 기상이 비참하고 처량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반대로 궁중을 비롯한 권간들의 삶은 강렬하게 대비되는 사치의 극치였다.

“풍속의 사치스러움이 오늘날보다 더 심한 적은 없습니다. 먹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차림의 크기를 서로 뽐내며 옷은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려함을 다투고 있습니다. 한 상의 비용은 굶주린 자의 수 개월 식량이 될 수 있고, 한 벌의 옷의 비용은 헐벗은 자 열 사람의 옷이 될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의 밭을 갈아 한 사람 먹기에도 부족한데 밭 가는 자는 적고 먹는 자는 많으며 열 사람이 천을 짜서 한 사람 옷을 입히기에도 부족한데 천을 짜는 자는 적고 입는 자는 많으니 어찌 백성들이 굶주리고 헐벗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혼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선거철에는 한국, 미국, 모두가 더욱 더 그렇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당연히 맑을 것이 아닌가. 깨끗하고 맑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윗사람들부터 솔선수범해야 가능하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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