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진정한 사랑은 희생

2007-06-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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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말했다. “집착도 사랑이다. 집착이 없으면 어떻게 사랑 할 수 있느냐고!” 혼란스럽다. 어떻게 집착이 사랑이 되는지 알듯 말듯하다. 집착이라면 욕심과 가까운데 아무리 집착이 사랑의 일부분이라 하더라도 욕심 쪽에 더 가까운 것 아닌가. 집
착은, 소유하려고 하는 욕심을 유발시킨다. 소유가 진정한 사랑인가!
아니다. 소유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집착이 낳은 결과로 소유했다고 치자. 그 소유는 소유로 끝난다. 소유란,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갖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소유한다 하면 그 소유의 한 편 대상은 사람이 아닌 물건에 해당된다. 노예가 주인에게 소유되듯, 소유의
개념엔 인격적인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소유의 개념 속엔 ‘나와 너’ 혹은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닌 ‘나와 그것’ 혹은 ‘그것과 나’의 관계가 성립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기에 나는 당신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소유당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사물로 바뀌게 된다. 사물이 아니라면 애완동물처럼 동물인 ‘그것’으로 전락되게 된다.
소유된 사랑은 영원히 사랑으로 남지 못한다. 소유의 관계에서 벗어날 때 사랑은 시작된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자. 소유를 낳게 하는 집착의 관계에서 벗어날 때 사랑은 시작된다. 물론 사람도 동물이니 욕심이 없을 수 없다. 사람에게서 성적인 본능을 빼놓는다면 애정 혹은 애욕
의 감정도 싹트지 않을 것이다. 애정 없는 사랑도 사랑은 아니기에 그렇다.


어떻게 보면 종족보존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랑 이전의 성적인 본능이 있기에 가능할 수도 있다. 다른 동물과 사람이 다른 것은, 다른 동물도 사랑은 한다. 그러나 철저히 종족보존의 본능에서 비롯된 결합일 뿐이다. 사람의 사랑은 종족보존의 본능에 의한 결합도 되지만, 그 사랑의 의미는 그것을 훨씬 초월한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이다. 어머니의 사랑 같다. 어머니의 사랑만 이것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의 사랑도 함께 포함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즉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조건 없이 희생한다. 이 사랑은 집착을 넘어선다. 어떤 어머니도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어머니는 없다. 모든 것을 다 희생한다.

희생하지 않으려 하면서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집착에 불과하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것 말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 것에도 희생이 따라야 진정한 사랑관계라 할 수 있다. 희생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배려한다.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 되기를 바란다. 끝까지 참아낸다.
진정한 사랑은 집착을 초월한다.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구속하지 않는다. 자유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위해서는 희생한다. 사랑을 위한 그 희생은 죽음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어떻게 사람이 죽기까지 사랑할 수 있나?”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을 때, 진정 사랑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집착하지 아니하고 소유하지 아니한 사랑. 목숨까지도 바칠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원죄를 타고났다고도 하는 사람이, 원죄 중 일부인 욕심과 집착을 끊고 자신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던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자 문제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친다. 자식을 살리고 부모가 죽는다면, 어느 부모 쳐놓고 자식을 살리기 위해 죽지 않겠다고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부모는 목숨을 기꺼이 버릴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자 희생이다. 이런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죽음도 불사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집착하려 할수록 사랑은 멀어질 수 있다. 소유하려 할수록 사랑은 떠나갈 수 있다. 집착을 통해 소유했다고 그 사랑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가지 않은 곳에는 사랑도 머물지 못한다. 사랑은 곧 마음에 있다.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가 사랑의 상태요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있는 상태다.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 혹은 ‘너와 나’의 인격적인 관계에서만 사랑은 꽃필 수 있다. ‘나와 그것’의 관계를 벗어나 집착과 소유의 관계가 아닌, 진정한 희생의 사랑을 서로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세상이 찬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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