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맨하탄의 붉은 별

2007-06-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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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복원가)

맨하탄 메이시 백화점에서 붉은 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백화점을 들락거리는 고객마다 큰 붉은 별이 선명한 샤핑백이 손에 들려 있고 그 태도 또한 당당해 보인다. 백화점 메이시와 샤핑백이 로고라면 붉은 장미나 비키니 누드가 더 적격일 것 같은데 붉은 별이라니 이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이다. 그래서 관심이 가고 그 저의를 파헤쳐 보게 된다.

동서 냉전에 남북열전을 거치면서 붉은 별은 공산주의를, 백화점은 자본주의를 상징시켰고 붉은 별은 전쟁을, 백화점은 평화를 연상시켰다. 이와 같이 도저히 융합할 수 없는 상극된 이미지를 광고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접목시킨 메이시 광고 팀의 발상은 상식을 뛰어넘는 기발함이다.


미국사회에 ‘붉은 별’이 극적으로 알려진 것은 책 ‘대륙의 붉은 별’이다. 1930~40년대 마우저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군과의 내전, 그리고 항일전쟁을 전개하는 실상을 서방세계에 처음 알린 책이다(저자-애드가 스노우).‘붉은 별’을 상업광고에 등장시킨 것은 메이시백화점이 처음이 아니다. 스타벅스가 한 발 앞섰다.현 쿠바 수상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을 이끈 채 개바라는 중남미 혁명의 아버지로 더 유명
하다. ‘붉은 별’이 붙은 래닝모를 쓴 채 개바라의 얼굴 모습은 일품이다. 그 모습을 그대로 커피 봉지에 인쇄시켜 시중에 내놓은 것이 스타벅스이다.이를 본 채 개바라의 여동생이 우리 오빠 붉은 별을 자본주의가 팔아먹고 있다고 소동을 벌인 일도 있었다.

상업광고 효과의 극대화는 소비자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그들의 뇌리에 고정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있다. 약육강식이라는 정글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시장경제 속에서 새롭게 상품 이미지를 띄운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덩 샤오핑의 명언도 있다. 수십년 동안 지구인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머릿 속 깊이 새겨진 붉은 별의 지명도를 화폐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붉은 별 정도의 명성(?)을 얻으려면 몇 년이 소요될까? 상업광고로서의 이용가치는? 시장경제의 달인 미국의 장사꾼들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져볼 만한 설문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답을 구하고 행동으로 말하고 있다.

동서남북 냉전도 종식되고 자본주의의 세계화 물결이 거세게 출렁대는 오늘 미국 TV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북한 평양 광장의 인민군 퍼레이드는 북한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미국인에 심어주고 있다. 이런 형태의 광고 효과가 상업광고에 응용될 날도 머지 않으리라 본다. 시선 집중과 이미지 부각이라는 광고 생리가 평양의 광기 넘치는 붉은 깃발을 그대로 지나칠 리 없다. 지켜 볼 생각이다.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한참동안 독일 국민의 반미감정으로 인해 미국 상품이 독일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이런 포스터가 베를린 시내에 나붙었다. 젊은 독일 엄마가 벌거숭이 어린아이를 미군 철모 속에 앉혀놓고 목욕시키는 포스터다. 이 포스터는 독일 여인들의 마음을 일거에 사로잡고 말았다. 미국상품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이 때를 풍자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 여인의 샤핑백 속에는 피임약과 어린이 기저귀가 같이 들어 있었다. 광고의 위력은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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