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긴 미국이야”

2007-06-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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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상담학 전공)

야외예배를 갔다. 자연의 품속에서 드리는 예배가 매주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보다 생명력 있게 느껴진다. 설교본문은 천지창조 이야기가 나오는 창세기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한다. 푸른 잔디와 나무들, 날아다니는 새들, 나비와 곤충들, 저 편에
보이는 잔잔한 강,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들이 역시 참 좋아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자연과의 접촉이 좋다. 집의 바닥이 나무로 된 것을 감사한다. 나는 가족용 실내화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거닐기를 좋아한다. 잔디 위를 맨발로 걷는 것은 특별한 기쁨을 준다.

간지럽고 촉촉한 것이 마치 자연과의 스킨십이랄까...
아이들과 잔디밭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탐탁지 않다. 벌레들도 있고, 더러운 것들이 있다고 눈살을 찌푸린다.
일단 잔디에 앉아서 예배를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같이 둘러앉기도 하고, 서 있기도 하고, 주위 울타리에 걸터앉아 예배를 드렸다.
자연을 멀리하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근대 이후 현대인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출현과 산업혁명으로 기계라는 날개를 달게 된 인간은 자연을 함께 공존해야 할 존재에서 착취해야 할 대상으로 바꾸어 버렸다.


고대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더 이상 신비한 힘의 존재가 아니라 계산적으로 지배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근대의 과정을 막스베버는 자연의 탈주술화(disenchantment)라고 하였다. 인간은 자연에 임의의 선을 긋고 구획을 나누어 사유화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로 전락하였고 인간은 자연을 상품화 하였다.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자연의 주기에 순응하며 살았다.

오늘날 자연은 인간의 주기에 순응한다. 자급자족형 경제에서 시장 지향적 경제로 전환한 세계는 극도로 높은 생산력을 요구한다. 생태계의 시간은 무시되고 시장의 시간만이 지켜진다. 비옥한 토양들은 365일 쉴 틈 없는 농사로 인해 피폐해진다. 선진국의 부유한 사람들에게 소고기를 더욱 싼 값에 제공하기 위하여 남미의 열대림이 불태워지고 목초지가 된다. 물론 그 열대림에 살던 원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난다. 하물며 동식물의 삶의 터전이랴.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땅이 파헤쳐지고, 산이 깎이며, 운하가 뚫리고 갯벌이 매립된다. 뉴욕타임스의 일요판 하나가 먹어치우는 숲의 넓이는 무려 150에이커(약 18만평)나 된다고 한다.

물론 두루마리 화장지에 사용되는 나무가 인쇄와 출판에 사용되는 나무보다 훨씬 많다.식당마다 나무를 잘라 만든 나무 젓가락들과 냅킨들이 넘쳐난다.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품들도 미국생활 초년생인 나에겐 생소하다. 덩치 큰 자동차들은 세계의 석유 매장량이나 현재 기름값과는 상관 없다는 듯이 달린다.그런 나에게 누군가 농담조로 그랬다. “여긴 미국이야~!” 그렇다. 여긴 미국이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면서 전세계 자원의 30%를 소비하는 여기는 미국이다. 광적인 소비와 향연에 방출하는 여긴 미국이다. 자신들의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줄이지 않으려고 국제협약(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한 여긴 미국이다. 생태계의 규칙은 무시되고, 시장경제의 규칙만 존중되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여긴 미국이다.

환경문제는 이제 더이상 어느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발전과 진보의 명목 하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시간이다. 여전히 인간의 제한된 능력에 기초한 과학과 기술을 맹신하며 언젠가 이 모든 문제들을 마법처럼 해결해 줄 구원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 우상 숭배는 우리를 비극적인 종말로 인도할 것이다.
무한한 발전이라는 근대시대의 희망은 지친 늙은이의 노망이 되어 생태계를 희생시키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을 희생시키며 결국 온 지구를 희생시킬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처럼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어설픈 날개를 망각하고 너무 높이 날아오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구 온난화라는 태양에 너무 다가와 인간의 교만과 이기주의라는 두 날개가 녹아버리는 것도 모른 채 더 높이 날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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