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자녀를 돈의 노예에서 해방시켜라

2007-06-13 (수)
크게 작게
이정은(취재1부 차장)

졸업시즌이다. 오랜 준비를 끝마치고 마침내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대졸자들은 올해도 머리에 학사모를 쓰고 당당하게 교문을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어깨에는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이 하나씩 얹어져있으니 바로 학비 부채다.특히 한인들은 자녀의 대학 학자금 준비에 그다지 철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한인학생들의 학비 부채 부담은 상대적으로 더 무거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뉴욕한국일보가 창간 40주년을 맞아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6%가 자녀의 대학 학자금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한인가정의 72%가 자녀를 사설학원에 보내고 있고 45%는 한 달 평균 자녀 일인당 500달러 가량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인가정의 재정계획이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민연수가 오래된 한인들도 준비가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였고 학비융자에 의존하겠다는 경우도 4명 중 1명꼴이어서 사실상 아무런 장기계획 없이 무방비로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치는 이민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1년, 2년 또는 5년, 10년 후는커녕 바로 이번 한 달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형편의 사람들도 물론 많다. 그렇다하더라도 학자금은 하늘높이 치솟을 대로 치솟아 대책 없이 바라보고만 있기에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의대나 법대 등 전문대학원이라도 진학하면 졸업과 동시에 집 한 채를 머리에 이고 나와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만큼 학비부채는 거의 평생을 쫓아다니는 버거운 존재다. 흔히들 교육문제를 논할 때 유태인들을 예로 든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13세가 되면 ‘바르 미
츠바’라는 성년식을 성대히 치르고 가족이나 친지가 전달한 축하금을 모아 자녀의 미래를 위한 종자돈으로 적립한다고 한다. 결국 이 적립금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곧장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사채업자의 세계를 다루며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의 한 드라마에서도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갈수록 많은 대학들이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학비 전액지원 정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생활을 앞둔 자녀들이 ‘돈의 노예’된 신분으로 출발선에 서있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뭐라도 준비해야지…’하는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
라도 필요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