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잘난 사람, 못난 사람

2007-06-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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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박(법학박사)

간혹 어떤 유리로 된 문이나 거울을 지나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언뜻 옆에 비치는 것은 옛날에 나의 할아버지가 보이는 것처럼 보이며 나를 착각하게 한다.어이가 없게 많은 나이가 되면서 “요즘 건강하시지요?” 하는 인사가 자주 들린다. 어느새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인생이 되었다.
가만히 돌아다 보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헛수고만 많이 하고 헛걱정만 많이 하며 살았다. 그 헛수고란 일등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꼴찌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헛걱정이란 결국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그런데도 언제나 인생을 두려움 속에서 살았고 언제나 가슴은 두근거리며 지내왔다. 말하자면 참새처럼 산 것이다.일등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는 일등이 되려는 그 자체 보다는 결론적으로 꼴찌는 되지 말자는 심리에서 나온 것이므로 도망가는 마음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어찌되었던 꼴찌는 하나이다.
들은 이야기로, 케냐에 있는 자연 동물원에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사나운 육식동물들이 어떤 철망이나 구조물이 없이 자연 방생하고 있다는 것이고 한쪽에는 기린이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이 유유히 풀을 뜯어먹고 있다가 가끔 사자나 호랑이의 급습을 받고 줄행랑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어찌됐던 잡혀 먹히는 놈은 쫓는 놈의 배를 채울 한 마리이거나 아니면 두마리이지 수 백마리의 사슴은 아닐 것이다. 먹히는 놈은 어찌됐건 하나이다.30년 전에 본 영화로 ‘Airport’란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의 주연은 아니어서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세상이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공항에서 술에 만취해 여유만만하게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고 배꼽을 쥐고 웃는다. 영화에서이지만 그 사람은 죽지 않았다.
여러가지 걱정 중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는 26% 정도라고 한다. 이 통계를 믿건 말건 헛 걱정이니 머피의 법칙이니 하여 이상하게도 걱정을 많이하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고 걱정 없이 태연하게 있을 때에 무슨 일이 생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나면 걱정거리도 아닌 것을 공연한 걱정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한국에 ‘고스톱’이란 카드놀이가 있다. 광이 나오고 높은 숫자가 나오는 것 보다 10 부족이라고 5장 다 합해서 10이 안되는 것이 더욱 어렵다. 다시 말해서 꼴찌를 하기가 일등하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잘난 사람이 일등이 되고 바보가 꼴찌를 하여도 쫓기기는 다 똑같고 쫓기는 두려움은 잘나고 아는 사람보다 바보가 좀 덜하다.
강 건너 불난 집을 보며 거지 아범이 아들에게 “우리가 집에 불 날 걱정이 없이 사는 것도 다 이 애비 덕인 줄 알아라” 했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잘난 사람이던 못난 사람이던 삶은 다 마찬가지이며 공연히 일등을 하기 위해 지나친 걱정을 하며 살 필요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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