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과 인식의 출발’

2007-06-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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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성(자유기고가)

‘구라다 하쿠조오’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은 1921년도에 출간되었는데 44년 전인 1962년도 경인가, 내가 스물 두살 되던 해에 읽은 책이다.
우연한 기회에 헌책방을 뒤지다 제목만 보고 집었던 것인데 내가 읽었던 많은 책들 중에 항상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몇 권중 하나로 나의 인생관을 재정립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 책이기도 하다.

인간적인 사랑의 근본적 흐름은 인식이며, 인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의 마지막 목적이라고 갈파한 게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나는 주경야독을 하며 고생하고 있을 때였는데 워낙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외톨이 신세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
다. 가깝던 친구들은 모두 주간대학을 다니며 교복을 입고 학창시절을 마음껏 누리던 시기였는데 나는 새벽부터 기상하면 직장으로, 학교로 뛰며 자정이 다 되거나 새벽녘이 되어서야 귀가해서 비로소 피곤한 몸을 눕히는 그야말로 인생이 고달프기만 했던 때에 읽은 기억이 생생한
책이다.


요즘 말로 왕따를 당하거나 그래서 외톨이 신세이거나 벗이 없었던건 아니다. 그래서였는지 언제나 홀로 도서관엘 가고 혼자일 때가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조금도 외롭다거나 힘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당시 내가 처해있던 상황이나 내 처지를 십분 인식하고
내가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가를 알고 주어진 여건에 대응하는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 ‘구라다 하쿠조오’씨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 중 일부분을, 혹여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고 일부 발췌해서 옮긴다.“나는 누구에게도 사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안에 갇혀있을 때에 가장 편안한 심정을 누릴 수 있다.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는 평화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유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만의 진지, 즉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서는 내가 주인이며 왕
이다. 또한 암주이며 등대지기이다. 나는 타인에게 의존하는 생활의 불안과 나약함을 뼈저리도록 느꼈다. 이제부터 자기 자신의 위에 생활을 쌓아올려야만 하겠다. 다른 누구에게 의탁해서야 비로소 충족할 수 있는 생활이라면 그 자의 거취에 따라 항상 동요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만 한다.그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오직 나 혼자만으로써 완성하고 충만하는 생활을 누리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참다웁고 확실하며 안정된 생활이다.

우리가 타인이 수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표현을 시도함은 양심이 없는 무례한 짓이다. 구름과 안개를 벗삼아 산에 숨어 도를 닦는 선인(仙人)을 공연히 놀라게 한다는 것은 지각 없는 행위이다. 그리고 섬세하고 상하기 쉬운 마음을 가진, 또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을 갑자기 찾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경솔한 짓이다. 하물며 암자에 들어앉아 문을 닫고 희미한 등잔불 속에서 오로지 자기 마음에 간직한 지난 일을 사색하기 위하여 꽃을 피우는 여승(女僧)을, 물론 명분이야 순수한 사랑의 동기에서라고는 할지라도 억지로 찾아가 그 비밀을 감히 고백시키려고 함은 가장 어리석은 행위일 것이다. 고독을 원하는 영혼에게는 고독을 지니게 하라”구라다 하쿠조오씨는 은둔이야말로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항구요, 휴식처요, 기도와 고행의 밀실임을 강조했다.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세계에 잠시 빠져드는 것도 인생관을 재정립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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