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 빛나는 ‘6월 민주항쟁’

2007-06-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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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컬럼니스트/뉴욕교협)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그 해 6월, 민주화항쟁 당시 그 핵심에 있었건 그 주변에 있었건 상관없이 그것은 당대를 더불어 살아온 우리 모두와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1987년 당대의 화두는 민주주의였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시대정신이었다. 1987년 5월의 민주항쟁은 1981년의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국민들은 유신체제가 종식된 이후 또 다른 군사독재체제를 원치 않았지만 광주 5월 민주화 요구가 군부의 개입으로 깨지고 그 다음해에 전두환 국보위 위원장을 간접선거로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출범했다. 그리고 그 5년 임기가 끝나는 1987년, 민정당은 4월 ‘호헌조치’를 발표해서 간접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로 집권 연장을 시도하려 했던 것이다.그러나 국민은 더 이상 비정상적인 정치체제가 계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1987년 봄 개학부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는 터져 나왔고, 재야단체들의 성명이 이어졌다.


당시 시위대 구호는’호헌 철폐, 독재 타도’였다. 비정상적인 헌법에 의한 대통령 간접선거를 강력히 반대하고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일관된 요구였다.체제 유지를 위한 방어와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는 대치 정국 속에서 박종철 물고문 치사사건에 이어서 6월 9일 시위중에 이한열 학생이 경찰에 의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해서 드디어 6월 10일 그의 노제를 기점으로 민주화 항쟁이 폭발됐다.그로부터 20일간 서울시내는 한마디로 무정부 공황상태였다. 밤낮 없이 온 거리는 경찰과 학생들의 데모로 밀고 밀리거나 대치 상태에 있었다. 전대협의 지시에 의해서 전국 운동권 대학생들이 서울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상가를 침입하거나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상가들은 최루탄 속에서 문을 닫았다. 그런데 밤에는 또 다른 군중이 시위대에 가담했다. 근로자들이다. 청계 피복노조, YH 노조등이 조직되었으나 한국노총에 가입되지 못한 일단의 노동조합 근로자들이 무더운 6월 서울의 밤거리를 누비며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목놓아 외쳤던 것이다. 학생들의 가두 데모에 시민들이 가세하므로 수습이 불가능하게 됐다. 전국적으로 연일 벌어진 가두시위에 500만명 이상 연인원이 참가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영락교회 청년회 총무로, 한국기독교청년회 연합회 총무로 직장 퇴근후에 각종 회합에 참석했다. 코너에 몰린 정부 여당측에서도 만나자는 제의가 계속 들어왔다. 당시 민정당 대표였고 차기 대통령 지명자인 노태우 측근들이 요구사항을 직접 듣기를 원했다. 위험하다고 반
대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당시 인사동 민정당사를 방문해서 정부 고위간부들과 직접 면담을 했다. 당시에는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자다가도 다 잡혀가는 세상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는 나라에서 사는 것이 부끄럽다. 국민들은 직접선거를 원한다”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 다음날은 국회부의장, 그 다음날은 누구 계속 면담을 통해 민주화 요구를 제시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고 한줌 밖에 안되는 소수의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그 일주일 후 ‘6.29선언’이 발표되어 민주화를 위한 로드맵이 제시되었다. 결국 그들은 국민들의 요구 앞에 굴복한 것이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이 역사와 세계 앞에 독재국가의 오명을 벗게 되었고 지난 20년간 직접선거를 통해서 4명의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 것이다.

지나간 과거는 아름다운 것이라던가. 요즈음 지나간 독재시대를 재평가하는 모임도 많이 있고, 요즘 학생들은 취직 공부에 여념이 없어서 ‘민주주의가 뭐 그렇게 대수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언젠가 1987년 6월 항쟁의 의의를 물으면 영화 ‘친구’의 한 장면처럼 이렇게 멋있게 대답할 것이다. “쪽팔리잖아-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는 것은...” 사실 비정상적인 정치체제 하에서 살아가는 콤플렉스는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 세대는 ‘자기 앞의 생’의 과제를 자랑스럽게 해결해 냈던 것이다.

지금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자기 자리에서 생업에 열중하고 자식들을 키우고 있을 ‘영원히 젊은’ 동지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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