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프라 윈프리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2007-06-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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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졸업식의 계절 오월도 지나가고 짙은 신록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지난 5월 12일 흑인 두뇌를 배출하는 산실인 흑인들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워싱턴에 있는 하워드대학의 이색적인 졸업식이 있었다. 이 대학에서 토크쇼의 호스트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가 초빙되어 학위 수여식에서 명예 박사학위(humanity)를 받았다.그녀가 융단같은 잔디가 깔린 교정에서 검은 학위복 차림으로 연설하는 장면을 CNN-TV에서 생방송으로 비춰주었다.

다른 연사들의 엿가락같이 늘어놓는 연설보다는 그녀의 연설이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그녀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개인적인 체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녀는 비록 작은 지역 방송사이지만 미국 최초의 흑인 앵커우먼이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때 나는 너무 흑인다웠고(I was too black) 또 너무 감정적(I was too emotional)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그녀는 구릿빛의 검은 피부와 넙적한 코와 두꺼운 입술, 검은대륙 아프리카의 뿌리를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뉴스 리포터로서의 자질로 두각을 나타내기 보다는 그녀가 TV 토크쇼 진행자로 발탁되면서 그녀의 눈부신 변신이 시작되었다고 한다.그 때 주위로부터 그녀의 이름을 미국인다운 느낌을 주는 ‘수지’라는 이름으로 바꾸라는 강요에 가까운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당연히 거절하였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신감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민 초기 나의 촌스러운 이름을 미국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 영원히 찍힌 각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그녀의 연설은 인종차별과 빈곤의 늪에서 살았던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흑인들의 암흑시대의 이야기로 되돌아 간다.흑인 배우인 시드니 포에티어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1964년 전까지는 헐리웃에서 흑인 배우를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녀의 연설 도중 박수갈채가 여러차례 터져 나왔다. 그녀의 토크쇼의 진행도 자석과 같은 강한 흡인력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얼마 전에 ABC에서 진행되는 그녀의 쇼에서 2004년 동성연애자임을 고백하고 중도 사퇴했던 제임스 맥그리비 전 뉴저지 주지사의 이혼한 전부인이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남편이 호주 출신의 기업가와 동거중이며 동성연애자라는 고백을 받았을 때 산산히 망가졌던 절망과 혼란스러움을 고백하였다.인터뷰가 진행하는 동안 초대석에 앉아있던 여자들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그녀는 토크쇼에서 방청객들과 진한 공감대를 만들어 간다.

성폭행, 미혼 임신, 마약에 아무 보호장치 없이 노출되었던 그녀의 성장기는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불행을 성공으로 역전시킨 신화를 만들어 냈다.그녀는 토크쇼 진행자이자 여성사업가로 막대한 재산과 미디어 그룹 프로덕션 소유, 사회단체의 운영, 자신의 이름을 딴 잡지 발행 등 여러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밑바닥에서 창공으로 높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가 달려있는 것
이 아니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교정에서 사각모를 쓴 오프라 윈프리는 갈라진 시멘트 바닥 틈 사이를 뚫고 피어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민들레와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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