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요즘 여자 옛날 여자

2007-06-06 (수)
크게 작게
여주영(논설위원)

오랜만에 찾은 한국에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느낀 것은 한국이 매일 매일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비례해서 여러 가지 가치관들도 너무 빠르게 놀라울 정도로 변화하는 것을 실감했다.
여성들의 가정관이나 사회관, 그리고 삶의 패턴들이 내가 20여 년 전 한국에서 살았던 시대하고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괴리감을 느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들이 변한 것이 과연 긍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사는 동안 가져왔던 가치관들이 옳은 것인지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이런 변화가 당당하고 자유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것이 꼭 좋은 것일까 회의하게 되는 면도 없지 않았다.

사실 지난 한 세기동안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입지와 생활패턴이 그 전 시대와 비교하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게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이 ‘인형의 집’을 써서 1901년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타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상징성이 있다. 그 후 100년 동안 인형의 집을 탈출한 노라처럼 여성의 위치와 꿈은 급속도로 변해왔다.
누군가 ‘세계를 변화시킨 100대 사건’이라는 책에서 그 첫 번째를 ‘피임약의 발명’으로 꼽았듯이 성생활의 패턴도 완전히 변화를 가져왔다.


이번에 한국에서 들은 얘기 중에 중년여성들이 ‘애인이 없으면 바보’라고 하는 소문이 거의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면에서 한국을 떠나온 지도 오래고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산 세대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안 되지만 한편 그렇게 당당하게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부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뉴욕의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과연 내가 그들을 진정으로 부러워하고 있는 것인가, 또 그녀들의 삶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내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전 세대의 여자라고 비판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불변의 가치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왜 한국의 여성들이 미국이나 서구의 여성보다도 그런 면에서 더 앞서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한국이 부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미국보다도 잘 사는 것도 아니고 풍요가 넘치는 복지국가도 아니요, 이제 막 선진국에 진입하는 과정인데 그런 면에서 지나친 개방은 뭐가 좀 비정상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는 땀 흘려 살던 시기에서 부유한 국가로 진입하면서 과도기적인 가치관의 혼돈이 온 것이 아닐까.

반세기전만 해도 전통적인 유교적 관습 속에서 여성들이 ‘여필종부’ ‘일부종사’ 라는 관습 속에 억매여 살았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유교체재가 몰락하고 대가족제도가 해체되면서 한국사회를 지탱해 왔던 가치체계가 급속히 무너졌다. 그리고 새로 밀려 들어오는 서구사조와 더불어 기독교가 새로운 종교로 확산됐지만 그러한 것이 새로운 가치관과 윤리관을 형성하기에는 현실적 영향력이 미약했다.
더욱이 자본주의 체재 하에서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 다양하게 진출하고 남성 못지않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갖게 됨으로써 자신들의 권리주장도 당연히 높아지고 또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게 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들이 전통적인 사회와 가정에 질서를 근본적으로 붕괴해서 우리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미래를 가져올 것 같은 우려가 된다.

한 집에 여러 성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보면 아예 성이 필요 없는 그러한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상속권과 소유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알 수 없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미래의 모습이다. 독신부모가 증가해서 어머니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태어날 때부터 혼자 자라는 신 인류가 태어나서 공상 미래영화 같은 진짜 이상한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모두 수퍼 맨, 베트 맨, 스파이더 맨, 켓 우먼, 슈랙, 손오공, 사오정 같은 인간들이 세상을 휘젓고 다닐 것인가.

여성의 권리가 남성들과 동등해진 것은 바람직하지만 가부장제도와 더불어 질서와 가치가 붕괴되는 사회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나 자신은 몸에 익숙한 옷이 편하듯 어쩔 수 없는 ‘옛날 여자’이고, 내가 살아온 예전의 라이프 스타일이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는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