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잊혀져 가는 조국의 6월

2007-06-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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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남(전 재향군인회 회장)

본인은 이태원 초등학교 3학년 때 6.25를 만났다. 걸어서 멀리 대전 근교까지 피난 가면서 온갖 고생 다 하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병들어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극적으로 부모를 만나 살아났다.피난을 가면서 길가와 기차 속의 시체더미들, 추운 날씨 부모와 헤어져 울고 있는 아이들, 먹을
것을 훔치며 싸우는 사람들, 그야말로 생지옥을 9살 어린 나이에 경험했다.

1968년 청년 때는 청룡부대 전투요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무더운 날씨와 모기 때문에 고생하며 또 민족성이 강한 월맹군과의 싸움에서 많은 대한의 꿈 많은 젊은이들이 이국땅에서 전사하고 또 중상을 입었다.
항공대를 나와서 항공 장교가 되어 다낭, 호이안 상공에서 적정을 정찰하다가 저격당한 친구는 갓 결혼하여 한남동에서 살았었다.법대를 나온 친구는 월남전의 심한 부상으로 자포자기한 생활을 하다 끝내 숨졌다.모두가 출세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진 멋있고 잘난 친구들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조국의 부름을 받아 청춘을 바친 애국자들이다.


우리 조국이 이제는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 모든 참전자들에게 65세가 되면 참전 명예 수당을 평생 주며 고엽제 환자나 부상자들에게는 보훈병원에서 평생 책임 치료를 해주고 있다. 또 늦었지만 조국의 이름 모를 산천에 묻혀있는 6.25 전시자들의 유골을 발굴하여 국립묘지에 안장시키고 있다.
6.25 때 이북에 포로로 잡혀가 노예처럼 분뇨장이나 탄광에서 일하다 병들어 거의 세상을 많이 떠났고 몇몇 사람만 지옥같은 이북생활을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조국의 품에 안겼다.그러나 몇 십명 남지 않은 국군포로들을 하루빨리 꿈에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모셔오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미국정부는 한국전쟁 때 전사한 미군들의 유해를 지금도 이북과 교섭해서 요구하는대로 돈을 주고 발굴하여 하와이에서 DNA 검사하여 가족들에게 통보한 다음 국립묘지에 안장시키고 있다.

미 재향군인병원에는 아직도 한국전 부상병들이 누워있다. 그들은 결혼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가족도 없다. 오로지 간호사들이 위로해 주며 생일 때는 생일카드, 크리스마스 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애인이나 자녀처럼 보내주며 도와주고 있다.키세나 공원 근처 한인이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재향군인의 날 때 한국전 기념 메달을 참전용사들에게 걸어주며 한국전쟁 때 참전한 것이 일생의 보람이라고 회고한다.

한국전쟁 때 미군 4만여명이 전사했고 7,000여명이 포로로, 그중 반이 포로수용소에서 죽고 반만 송환되었다. 또 8,000여명이 행방불명 되었다.
모두가 부자 나라 미국에서 출세하여 잘 살 수 있는 젊은이들이 공산 침략에 풍전등화 같았던 우리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어찌 한인들은 평생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 뉴저지에서 지난 메모리얼 데이 때 많은 한인들이 가족을 데리고, 또 단체가 퍼레이드와 기념식에 참가한 것을 보았다. 퀸즈의 어느 대형 교회 야외예배와 체육대회 때에는 행사 전에 미국 국가를 부르며 뜻깊은 미국의 현충일을 보냈다. 미국 국가가 울려퍼질 때 우리는 하던 운동이나 동작을 멈추고 예를 갖추어야 하며 어린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미8군사령부에서 성조기 하양식 할 때 가던 차량들이 멈추는 것을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오는 7월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플러싱 키세나 공원 안에 한국전 기념비가 세워져 6.25 한국전쟁을 영원히 기리게 된다.400만의 희생과 1,000명의 이산가족을 만든 6.25전쟁을 고국에서는 기념행사도 안 하며 잊혀져
가고 있지만 해외에 있는 우리라도 6.25를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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