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 3의 눈

2007-06-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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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세탁업)

가짜의 얼굴을 하며 서로 서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의 말 중에는 ‘建前’이란 말과 ‘本音’이라는 말이 있다.

앞에 말은 글자 그대로 무엇을 세우기 전에 기초공사 같은 것으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인사’하고 ‘칭찬하고’ ‘90도 허리꺾기’ ‘이빨 드러내고 웃기’ 등등에 해당하는 것이고, 뒤에 말은 그야말로 속마음을 말하는 것인 ‘진짜 소리(本心)’로 즉 본론을 말한다. 하지만 본론 역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져 이게 저건지 저게 이건지 알쏭달쏭하기는 마찬가지라 노상 헷갈리다 볼일 다보는 것이 그들의 상투적인 수단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수두룩한 가짜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온갖 성스러움으로 치장하고 근엄한 얼굴로 X폼 잡는 소위 무슨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차라리 속이 보여 애교에 속하지만 여럿이 둘러앉아 맛있는 것 먹다가 한 사람 가면 그 사람 욕을 하고 또 한 사람 가면 그 사람을 헐뜯으니 남은 사람은 가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데까지 이르면 인간이란 口蜜腹劍(입에는 꿀을 물고 배에는 칼을 품고 있는)이구나 하고 탄식하고 누가 말했다는 ‘만인은 만인의 적이다’라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요즘 대학에서 인기있는 학과가 ‘행복학’이라고 한다. 그 행복학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가 행복하려고 하면 쉽게 금방 행복하게 되는데 자꾸만 아무 도움도 안되는 남에게 행복을 보이려고 가면을 쓰고 가짜를 추구하니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기가 아닌 그들이 되려니 자연적으로 가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짜로 치장하고 폼 잡고 가면과 가장으로 일관되게 살아도 어느 때인가는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임종의 자리라 하더라도…

아는 사람중에 인도인이 있어 그들이 노상 미간에 빨갛게 바르고 다니는 동그라미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물어본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종교 힌두교를 믿는 그들은 ‘빈다’라는 이름으로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자는 의미로 ‘제 3의 눈’이라는 의미로 빨갛게 표시를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릇 모든 종교가 진실을 지향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전에 우선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진실해야만 믿는 대상에게도 진실해지는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신이 가짜로 살면서 표리부동하고 천의 얼굴을 가지고 살면서 남에게 어떻게 진실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이야기하고 우정을 말하며 가족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한 눈물이 때로 우리 자신까지도 속인다”(라 로시푸코)라는 말과 같이 자꾸만 가짜로 살다 보면 가짜에도 면역이 되는 것이다.이것은 무서운 것으로 자기가 자기를 너무 오래 속이는 것이 버릇이 되고 그것이 체질화 되다 보면 나중에는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치유되어 가는 첫 징조가 “내가 혹시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첫 물음이라고 한다.

작년 가을 단풍들이 낙엽되어 떨어지고 그 가지에 이제 연록색의 아름다운 잎들이 새 잎을 만들어 나왔듯이 이제 우리도 ‘제 3의 눈’으로 가끔 자신을 쳐다보며 자기 성찰로 자기를 쳐다보며 ‘짜가’가 아닌 ‘진짜’가 되어서 이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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