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자의 자존심

2007-06-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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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며칠 전, 막내딸 백화가 입은 민소매 흰 셔츠를 가만히 보니 내 셔츠였다. 그래서 “아니 너 왜 엄마 셔츠 입었니?” “요새 흰 셔츠 좀 입으려해도 내 서랍에 하나도 없더니 네가 다 입는거구나!” 했다. 그랬더니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당신 그거 내 스토어에서 가지고 온거잖아”한다.

나는 기가 막혀서 아니 딸에게 소유에 대해 가르치려던 것이었는데 무색하고 민망해져서 나도 모르게 “그렇지만 그 스토어 반은 내 소유지요!”하고 말이 쑥 나갔다. 그랬더니 딸을 보며 싱글벙글하던 남편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며 반색을 하면서 “그럼 당신이 출장다니고 당신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영했어? 어떻게 그게 반이 당신거야!”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져 갔다.


나도 질새라 “코퍼레이션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으니 당연히 반은 내꺼야!” 하고 우겼다. 분위기 좋던 저녁은 살벌한 밤으로 변하고 홧김에 일찍 자고 새벽기도 갔다 와서 일찍 출근해 일하는데 영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아무래도 기분이 찜찜했다.그래서 남편의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로 “지난밤에는 미안했어요. 사실이지 본의 아니고 당신이 딸 버릇 고약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분풀이로 나도 모르게 한 말이니 용서하고 당신이 열심
히 고생하며 사업하는 것, 식구를 위해 힘쓰는 것 알고 있고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자존심을 꿀꺽 삼키고 사과문을 보냈다. 그랬더니 금새 알았다고,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답이 왔다. 그래서 그 날 밤은 남편이 좋아하는 마파두부를 해놓고 기다리다가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Big
kiss and hug’를 해줬더니 어제 일은 씻은듯이 얼굴에 환한 웃음이 돌고 기분 좋은 저녁이 됐다.

부부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어떤 때는 남에게는 삼가하는 말도 막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남편의 자존심을 인정하고 조심하고 어떤 때는 남편이 말도 안되는 걸 막 우겨도 모른 척하면 나중에는 슬그머니 미안해서 되레 아부하며 기분을 풀어주려고 한다.

물론 어떤 때는 분명히 내가 옳은 줄 알지만 그래도 지는 게 이기는 거려니 하고 아이들 앞에서나 둘이 있을 때나 사람들 앞에서도 남편의 체면과 자존심과 잘난 점을 인정하면 칭찬받으려고 더 좋은 남편이 되는 것 같다.
우리 학부모협회에도 남자분들이 들어와 활동하니 참 좋은 점이 많다. 엄마들끼리 최선을 다해서 일하지만 또 남자 특유의 아량과 다른 관점과 새로운 목표와 아버지로서의 마음으로 일을 하니 정말 세상은 남자도 필요하고 여자도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학부모협회에서 한인 자녀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25학군과 26학군에서 각 각 교육위원이 극적으로 배출된 것,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버지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와주신 한인언론과 모든 학부모들, 한인사회에도 감사한다! 남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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