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한국인의 은인 마리너스 수사

2007-06-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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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저는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저에게 옵니다”

6.25전쟁 중 유명한 사건인 1950년 흥남 철수작전 때 기록적으로 많은 피난민을 대피시켜 유명했던 민간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이 후에 당시를 회상한 말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7607톤짜리 민간 화물선인데 흥남 철수 때 1만4,000명의 피난민을 피난시켜 1960년 미국정부로부터 ‘용감한 배’로 명명됐고 라루 선장은 최고의 공훈장을 받았다. 또 이 배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운 배’와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배’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흥남 철수작전은 유엔군 10만5,000명과 피난민 10만명이 탈출한 현대판 엑소더스 사건이다. 6.25전쟁 중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에 밀려 후퇴를 하게 되자 유엔군사령부는 흥남항에서 바다를 통해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수송선이 흥남항에 들어와 군부대의 철수가 시작되면서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흥남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유엔군 엘몬드 장군의 민간 고문이었던 현봉학 박사가 피난민 철수를 교섭하여 12월 19일부터는 피난민 수송이 시작되었는데 수송선이 턱없이 부족하여 1,000명 정도의 수송선에 5,000명 이상을 태웠다.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제트연료 300톤을 싣고 흥남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 철수작전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군 수송선의 부족으로 피난민을 모두 태울 수 없게 되자 미군장교가 작은 배를 타고 이 화물선에 다가왔다. 그는 민간 화물선에 철수작전을 명령할 수는 없으나 자원하여 피난민을 태워줄 수 없겠느냐는 의사를 물었다. 라루 선장은 그 자리에서 즉각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군부대와 피난민들이 빠져 나가고 흥남 시내에 포화가 작렬하던 12월 23일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마지막으로 남은 미보병 3사단의 엄호 아래 피난민들을 태웠다. 선장은 “눈에 보이는 사람은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구출하라”고 명령했다. 이리하여 위험한 제트연료를 가득 실은 이 배에 1만4,000명의 피난민이 탔다. 배 전체에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은 선 채로 움직일 틈도 없이 배가 하나의 고체 덩어리처럼 되었다.

이로부터 3일간 선장 이하 선원 47명과 피난민 1만4,000명의 기적의 항해가 시작됐다. 영하 30도의 추운 날씨에 전기도 난방도 없었다. 통역이 없어 승무원과 탑승자간에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어 추위속에 굶주렸고 화장실이 없어 갑판에서 대소변을 처리했다. 구조작업 후 일본에서 이 배 전체를 청소했는데 그 후 한달이 지나 시애틀에 정박했을 때도 악취가 심해 부두 노동자들이 코를 막고 일을 했다고 한다. 이 해 크리스마스를 지나 12월 26일 거제도에 도착했을 때 피난민 중 한명도 죽지 않고 오히려 항해 중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기적의 항해를 이끌었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이 사건의 체험과 그 후 얻은 신장병으로 인해 1954년 22년간의 바다생활을 접고 성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사가 되었다. 뉴저지의 뉴튼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가 된 그는 마리너스란 수도자 이름으로 평생 수도생활을 하다가 지난 2001년 10월 14일 87세의 일기로 선종했다. 뉴튼 수도원은 수도사가 줄어들어 폐쇄 위기에 있는 것을 한국의 왜관 수도원이 인수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왜관수도원이 인수한지 이틀 후이니 그와 한국과의 인연이 이렇게도 질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뉴튼 수도원은 마리너스 수사와 승무원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수도원 경내에 월드 피스 밀레니엄 팍, 즉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마리너스 수사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인 천주교 교인들이 그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활약상을 소개한 책자를 판매하여 그 수익금으로 비용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천주교 교인들만의 일이겠는가. 한인 중에는 그날 흥남 부둣가에서 이 기적의 배에 탔던 피난민과 그 가족도 있을 것이며 또 다른 배를 탔던 피난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문턱에서 절망하고 있던 수많은 동족을 구해준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리너스 수사는 참으로 한국인의 은인이다. 6월은 특히 보훈의 달이다. 그 은인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화공원 조성에 한인들이 정성을 모아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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