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미운 일곱살

2007-05-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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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선(하버그룹 수석부사장)

얼마 전, 아는 친지들과 함께 골프 약속이 있어 B골프장의 클럽하우스에서 티오프 시간을 확인하러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앞에 온 한인 네 사람들은 아마도 예약 없이 쳐들어 온 것 같았다. 다음 시간이 오후 2시 32분이라고 하자, 그 중의 한 사람이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20달
러짜리를 꺼내 놓으면서 좀 빨리 끼워달라고 부탁을 한다. 나는 혼자 속으로 ‘이건 아닌데’하면서 내 얼굴이 공연히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직원이 거절을 하자 모두들 우물쭈물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마치 내가 거절이나 당한 듯 무척 챙피하고 보지 않으면 좋았을 것을 왜 보았는지 후회도 해 보았다.그 후로는 어느 골프장에 가든지 클럽하우스에 갈 때면 앞 뒤의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보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 내외는 심심치않게 햄버거를 먹으러 맥도날드 아니면 버거킹에 가곤 하는데 이따금 눈에 띄는 일이지만 왜들 그렇게 종이 냅킨을 한 뭉치씩 집어다 놓고, 다 먹고 나갈 때는 남은 한 뭉치를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또 안타깝기도 하다.백화점에서 뭔가 계산할 때에 손도둑들에게 잃어버리는 손실까지 고려해서 상품에 판매가격을 매기는 것과 같이 이 한 줌의 종이 냅킨이나 한 줌의 케찹도 다 우리가 간접적으로 돈을 내고 있다고는 왜 생각하지 못하는지 갑갑하다.


독일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시키면 종이에 싼 버거에 케찹 하나에 그리고 종이 냅킨 한 장을 아예 카운터에서 내어준다. 미국에서 같이 내 마음대로 종이 한뭉치, 케찹 한 줌 집어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이것이 너무 야박한 것일까? 아니면 문화인 다운 생활습관일까?
미국사람들은 자기네 마음대로 살더라도 우리 한인들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민족 답게 그 티를 내면서 예의 바르게 살면 얼마나 좋으련만.
우리 1세들은 다 커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니 혹 미디어에서 ‘home depot’를 ‘홈 디폿’이라고 발음하든, 아니면 ‘platoon’(군에서 말하는 소대)을 그대로 ‘플라툰’이라고 발음한다 해도 우리 모두는 이해하고 지나칠 수 있겠는데 분명히 신체장애자 전용 주차 칸에 시치미 뚝
떼고 자기가 신체 장애자인양 차를 주차하고 유유히 걸어가는 사람은 우리의 예의를 다 어디에 버리고 사는지 딱하게만 보인다.

퀸즈의 제 X커뮤니티 보드 모임에서 한인들을 상대로 거센 불평과 항의가 나왔다는 보도가 퀸즈지역 주간지의 1면 기사로 실린 적이 있었다. 한인이 경영하지 않는 업소도 꽤 있지만 유독 한인들의 요식업소, 유흥업소, 노래방을 들추면서 쓰레기, 방뇨, 야밤에 고성방가 등등이 주민의
삶의 질을 해치고 주민들을 괴롭힌다는 불평이었다.뉴욕주 상원의원, 시 경찰, 시 위생국 등이 총동원되어 야밤에 노던 블러바드를 훑으며 모든 한
인업소들을 일일히 방문(?)했다는 기사였다.

지난 4월 말 노래방에서 늦게까지 놀고 새벽 6시경 집에 가던 중 음주운전으로 시내버스와 충돌해 십여명의 부상자를 낸 한인 청년의 뉴스, 그 일이 있은지 일주일도 안 돼 자정이 넘어 고속도로에서 검문중인 경찰과 경찰차를 뒤받고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또 다른 한인 청년. 이곳의한인 수가 동양사람들 중에서 중국사람들 보다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히스패닉 보다 많은 것도 아니고, 흑인이나 백인들 보다 많은 것도 아닌데 왜 유독 우리 한인들의 끊기지 않는 기사가 뉴스를 만들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유독 한인들이 다른 민족들 보다 튀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까. 보통, 아이들이 성장할 때 미운 일곱살 때가 제일 말도 안 듣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다고 하는데 아마도 오늘 우리 한인의 이민생활이 그 나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세월이 가면 성숙해지는 날이 오겠지만 우리 주위의 미국사람들이 우리 한인만을 상대로 쓸데없이 공연한 불평을 한다고만 생각하고 쉽게 넘어갈 일만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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