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국제도시로 변모한 서울

2007-05-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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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이씨 조선 말 대원군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외국의 문물에 대해 문을 여는 개혁 보다는 어떠한 이유든 간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쇄국정책으로 우리의 전통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러던 것이 일본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우리보다 한참 전에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의 ‘섞여
문화’가 우리나라에 밀물처럼 밀고 들어오면서 우리의 고유문화는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휴가차 서울을 2주 동안 다녀왔다. 수 년 만에 다시 본 서울은 이제 예전에 내가 살던 서울이 아닌 완전한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외곽을 빼놓고는 가는 곳 마다 건물이나 상호, 간판 등이 온통 서양식의 디자인으로 포장돼 있고 어딜 가나 외국인들이 쉽게 눈에 띠었다. 백화점마다 세
계 유명 상품들이 즐비했고 동네 조그만 마트에도 미국에서 먹던 음식들이 없는 것이 없었다. 거리 곳곳마다 넘쳐나는 젊은이들의 옷차림은 미국의 유행을 저리가라 할 만큼 첨단을 걷고 있었다.


그 뿐인가. 뉴욕보다 더 잘돼 있는 전철은 물론이고 새로 개통한 도로는 언덕길에 커브를 틀 때 넘어지지 않도록 오히려 선진국에서 만든 도로 보다도 더 잘 배려해 놓았고 사동팔달로 뚫린 고속도로와 간판들은 국제화에 걸 맞는 한국의 변화를 쉽게 감지하게 만들었다. 음식문화 또한 옛날에 내가 먹던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식들이 너무 맛있고 정갈할 뿐 아니라 서비스도 일품이었다. 각 나라의 고유음식을 가는 곳마다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맛 또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의 생활태도나 의식주준도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완연히 달라졌다. 지하철의 깨끗함은 미국의 뉴욕보다 더 청결하고 버스나 택시들도 옛날처럼 그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고 이를 이용하는 승객들도 질서를 잘 유지하는 분위기였다. 거리에 널려 있는 깡통이나 휴지조각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있어 그야말로 서울이 국제도시로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관공서나 은행, 그리고 회사의 직원들도 이제는 군림하는 자세가 아닌, 시민이나 고객의 공복이요, 심부름꾼이다 하는 태도로 기다리는 입장이 오히려 지루할 정도로 자세가 많이 탈바꿈했다. 빈부의 격차는 여전히 심하지만 그래도 지하실이든 월세든 등 부칠 데만 있으면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극빈자들이나 노령자, 무의탁자라도 최저생활비가 나라에서 지급돼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국민의료 보험도 다 돼있어 몸이 아파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제화 수준에 걸 맞는 나라와 도시 수준이 되었다.

이러한 추세 탓인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혼혈을 마치 기형처럼 백안시하던 한국에 국제결혼의 숫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혼혈아동의 숫자 또한 놀라운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눈에 띠는 우량기업도 이제는 거의가 다 외국인 자본에 넘어 갔다. 철철 넘치는 외화를 가지고 있다 하면서도 국내기업을 왜 외국인들에게 팔아 넘겨야만 했을까? 그 것이 국내 정치인들이 했어야만 할 정치적인 공로였을까 그 것이 정말 궁금하다.
한국은 지금 이처럼 모든 것이 부재중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옛 정취나 모습, 그리고 그 감칠맛 나고 소박하던 옛 서울 사람들과 풍습, 그 진풍경의 맛을 이제는 못 느낀다.

박경리 여사가 쓴 소설 ‘토지’에서 보여주는 우리 식의 생활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땅은 있으되 우리의 모든 것은 이제 전부가 박물관의 진열품이 되었다고나 할까. 2,30년 전만 해도 집안에서 누군가 해외에 한명이라도 나갈라치면 온 가족이 마중을 할 정도로 비행기 한번 타기가 하늘에 별 따기같이 생각되던 것이 이제는 툭하면 동남아 여행이다, 태국여행이다, 일본여행이다. 미국여행이다 하며 하도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고 가는지라 어쩌다 맘먹고 한번 서울에 다녀올라 치던 한국행 비행기가 갈 때나 올 때나 모두 만석이어서 고생은 좀 되었지만 한국의 국제화가 헛말은 아닌 것만은 확실히 감지할 수 있어 그래도 마음은 뿌듯했다.

그 뿐인가. 서울행 한번 할라치면 일인당 비행기 왕복 요금이 거의 1500달러를 육박하는데 그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을 실어 날라도 날라도 끝이 없다는 소리이니 이제 한국은 역시 세계 경제대열에 당당히 한몫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국제도시로 변모해 가고 있는 서울, 정치만 잘해 준다면 얼마든지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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