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모리얼 데이에 미국을 생각하다

2007-05-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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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내과전문의)

여름이 시작되는 메모리얼 데이, 사람들은 사흘간의 연휴를 즐기기 위해 도시를 떠났다. 가까이에 있는 바닷가로, 또는 산으로, 공원으로 야외 바베큐도 하며 연휴를 즐기는 메모리얼 데이. 나는 또 도시에 남아 있다.
먼 길을 떠나 만나야 할 사람도 없지만 병원의 입원환자들을 매일 돌보아야 하는 직업적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3,000만이 움직일 것이라는 보도에 길거리를 꽉 메울 차량 행렬도 싫었기 때문이다.

긴 낮잠을 잔 후 집을 나섰다. 베이릿지 식물원이라는 동판을 읽으며 식물원 안으로 들어갔다.성조기가 펄럭거리고 양 옆으로는 POW(Prisever of War)라 쓰여있는 검은 깃발과 MIA(Missing In Action)이라 쓰여있는 깃발이 나란히 게양되어 있었다. 전쟁에서 산화해 간 전몰장병들을 추모할 뿐 아니라 포로가 되고 행방불명이 된 장병들을 이들은 잊지 않음에 국가란
이런 것인가, 이래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고 있었다.
60만명의 사상자를 낸 남북전쟁(1861~1865)이 끝나자 전쟁이 끝난 그 해 해방된 노예들이 남부 찰스턴에서 남군에 몰살당한 북군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메모리얼 데이(예일대학 역사학 교수 데이비드 블라이트 교수의 주장)이지만 모든 전쟁에서 산화한 전몰 장병을 추모하는
날로 연방법이 제정된 것이 1967년이다.


강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공원에는 풀밭에 누워 태양을 즐기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배구나 농구를 하는 사람들, 각종 각양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흑인도 보이고, 아랍계도 보이고, 온갖 인종들이 하나가 되어 미국의 자유와 자연과 공휴일을 즐기고 있었다.미국을 인종 전시장으로 부르던, 멜팅 팟(Melting Pot)이나 토마토 수프(Tomato Soup)로 부르던, 아니면 뒤섞인 샐러드(Tossed Salad)로 부르던 다 같이 미국인이 되어 미국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 광경은 신기할 정도다.

눈을 돌려 강 저편을 본다. 강바람이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숱하게 정박해 있는 배들 위로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프랑스 ‘에펠’이 설계, 미국에 선사한 것이 1886년, 111년을 저렇게 우뚝 서서 자유를 사랑하는 자, 억압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자
들은 이곳으로 오라는 듯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는 아폴로 신의 거상처럼 횃불을 들고 7대양과 대륙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유대계 여류 시인 엠마 라자러스(Emma Lazarus 1849~1887)는 그녀의 단시(短詩) ‘The New Clossus”에서 자유의 여신상의 상징성을 잘 노래하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1492년 제노아의 크리스토퍼 컬럼버스(1451~1506)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1620년 100명의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1만6,000년의 인간의 발자취가 있는 신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이제는 11%에 육박하는 이민자들의 국가가 되었다.
1776년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7년간의 전쟁을 치른 후 1783년 파리조약(Treaty of Paris)으로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가가 된 미국은 토마스 제퍼슨 등의 건국의 아버지들의 정신인 ‘자유와 법(法) 앞에서 만인의 평등”이 미국사회 곳곳에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것을 우리 한
인 이민자들도 보고 있다.

풀밭에 누워 햇볕을 쬐는 저 백인 여인도,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저 흑인 남자도, 네트를 쳐놓고 배구를 하는 저 아랍계 사람들도 미국이라는 천혜(天惠)의 자연과 자유를 만끽하며 모두가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을 지키려는 말없는 애국심을 보고 있다.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상징하듯 뾰족한 두 개의 돌을 세워둔 식물원의 9.11 추모 성역(聖域)을 보며 그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난 이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조국 대한민국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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