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바보인가?

2007-05-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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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줄을 서 있는 데 누군가 새치기를 한다. 그래도 그냥 놔둔다. 그러니 앞에 서 있던 사람과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마구 눈을 흘기며 새치기를 방관해준 사람을 나무란다. 방관해 준 게 아니고 새치기 한 사람을 그냥 못 본채 두었는데 사람들은 새치기한 사람은 나무라지 않고 새치기 하게 놔둔 사람을 힐난한다. “왜 새치기를 못 막았느냐!”고.

이럴 때 나서서 새치기 한 사람에게 “우리는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새치기를 하느냐! 당신은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다. 그러니 빨리 제일 뒷자리의 줄로 가서 서라.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 우리도 당신처럼 분초가 바쁜 사람이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있으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로 되어가지 않느냐!”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영어가 안 된다. 공짜 표를 얻어 음악회에 참석한다. 이층 뒷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대가 가마득하게 보인다. 노래를 부르러 나오는 사람의 얼굴이 작게 보여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 프로그램이 끝나고 막간이다. 잽싸게 아래로 달려 내려간다. 빈자리가 있어 차지해서 앉는다. 시치미 떼고 앉아 “야 오늘 재수 좋게 공짜 표로 들어와 귀빈석에 앉아 즐기는구나!”


마침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화장실에 다녀 와 앉으려고 하니 자리가 없다. 그 부부들은 아무 말 안하고 뒤로 간다. 그러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뒤로 가는 부부들을 멍청히 쳐다만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저 사람들이 남의 자리에 와 앉아 있다 주인들이 와 앉으니 그냥 뒤로 가는구나!” 공짜표로 들어온 부부 팔짱끼고 앞만 본다.

인터섹션(네거리)에서 앞으로 나가려는데 앞차들이 밀린다. 파란불인데도 네거리에 들어서지 못하고 앞차들이 나가기만 바란다. 뒤에서 “빵, 빵” 대며 “왜 안 나가냐”고 난리가 난다. 파란 불에서 빨간 불로 바뀌는 시간은 약 20초에서 30초사이다. 긴 곳은 1분 정도 가는 곳도 있다.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데도 차들이 앞에서 밀려있어 도저히 나가지를 못한다.
빨간 불로 변한다. 또 선다. 좌우에서 오는 차량들이 들어온다. 파란불로 바뀐다. 차량들이 다시 “빵 빵” 된다. 얼굴이 붉어진다. 나간다. 좌우에서 돌아 들어가던 차량들에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네거리 한 복판에 선다. 파란불이 빨간 불로 바뀐다. 일 개월 후 시(市)로부터 벌금
통지가 날아온다. 인터섹션에서 빨간불에 서 있었다는 게 벌금 이유다.

평소 공들여 직장생활을 잘 한다. 꾹 꾹 잘 참는다. 차라리 참지 말고 그 때 그 때 작은 목소리로 깔아 풀어나가면 좋으련만 참아 나간다. 그러다 한 번 화가 나면 폭발한다. 그러면 그동안 쌓아왔던 좋은 관계들, 공든 탑 무너지듯이 무너져 내린다. 물어보지도 않는 얘기 하지 말고 꼭 필요한 말만 하여 자신의 틈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묻지 않은 얘기를 막 한다. 한 마디로 상대방이 무슨 얘기를 하면, 그 말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막 대답하는 경우를 본다. 물어보지 않은 자신의 비밀과 약점까지도 털어 놓는다. 그리고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나” 후회한다. 그러면서도 “아니야, 화를 내지 않았으니까 다행이야”라고 위로한다.

“오늘 무슨~ 회식이 있는데 어디로 나오시죠!” “아, 네. 저, 그렇게 하지요” 해 놓고는 “아니 왜 ‘노(No)’를 못했나!” 금방 후회한다. “한 잔만 ‘딱’ 더 하시죠!” “아니오. 벌써 많이 마셨습니다. 오늘은 이만 마시지요. 더 마시다간 큰 일 나겠습니다.” “아니, 2차밖에 안
했는데 3차는 가셔야죠!” “아니, 2차 했으면 됐지 3차는 또 무슨 3차요! 오늘은 이만입니다”를 못한다. 거절 못하는 것도 큰 병이다. 거절을 해도 ‘아주 상냥하게’ 거절을 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처세를 익힌 사람들이다. 초대한 사람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해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술이 오가는 회식 자리 중간에 살짝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사람들은 한 수 더 위다. 돈 계산 안 해도 되며 몸 축도 안 간다. 그렇다고 미움도 안 받는다.

“일본인(놈)들의 웃음 뒤에는 늑대의 발톱이 있다”고 어느 친구는 말한다. 일본인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 세상을 잘 살아나간다. 절대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상대를 화나게 하지 않는다. 자기의 이익은 최대한 챙긴다. 어려운 일 있으면 살살 잘 빠져 다닌다. 그리고 아무런 방비도 없을 때 상대방의 뒤통수를 친다. 거꾸러진다. 다시 일어나려면 많은 날들이 걸린다. 아니, 아예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줄을 서 있는데 누군가 새치기를 한다. 그냥 놔둔다. 못 본채 한다. 그리고 욕 얻어먹는다. “바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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