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뜬쇠의 꿈

2007-05-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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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뜬쇠’는 내게 낯선 말이다. 세 가지 사전 중 하나에서만 그 뜻을 찾았다. ‘남사당 놀이에서 각 종목의 우두머리 비나쇠, 덜미쇠 따위’로 나와 있다. 덧붙여서 KTCC(Korean Traditional Cultural Center) 권 대표에게 그 말 뜻을 알아보았다. 그는 ‘세 가지 뜻이 있지요’ 하더니 마치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첫째, 마당에서 태어나서 마당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둘째, 대물림으로 악기를 하는 사람들. 셋째, 분야별 최고의 명인을 칭합니다’라고 상세히 설명을 하였다.그건 그렇다고 하고, 극장 안 무대 오른쪽에 묵직한 필치로 쓴 ‘뜬쇠’기를 세워놓은 까닭도 알고 싶었다. 뜬쇠들이 공연을 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것이 등장 인물들의 꿈이라는 뜻인가. 아무튼 ‘뜬쇠’기에 마음을 빼앗겼었는데 대표 권칠성 님의 어렸을 때부터 사물놀이 한 곬으로 이어진 이력을 읽고 나서야 이 분이 바로 ‘뜬쇠’임을 알게 되었다.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이 분이 경영하는 국악 전용 극장은 뉴욕 브로드웨이 타임스스퀘어에 자리잡고 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꼭 여기라야 됩니까’하고 그 이유를 알아보고 싶었다.


다른 분의 보조 설명에 따르면 ‘국악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공연의 중심지역에서 펼쳐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뜬쇠 권 대표의 오랜 꿈이었다고 한다. 이 분은 국악의 품격을 세계인에게 알려서, 앞으로 이곳을 국악의 메카로 만들려는 결의가 대단하다는 것이다.꿈을 가지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꿈을 살리려면 뒷받침을 하는 경제력이 따라야 한다. 지
금까지 60여회의 공연을 하였다면 그동안 수지 결산이 맞았던 것일까. 대부분이 무료 공연이었다는 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거기에 대한 그 분의 생각은 우선 내 힘으로 시작하다가 도움을 받겠다며 자비로 초석을 놓았다는 이야기다. 다행히 요즈음 한국내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진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지만 거기에 기댈만 한가.

이만한 사업이면 국가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민간의 문화사업이라야 예술의 혼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혼자의 힘으로 이 일이 가능할까. 잔뜩 벼르다가 공연을 보고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뜬쇠의 큰 꿈이 여기까지 이루어서 대견하지만,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일시적인 구제책이 아닌 반 영구적인 기반을 만들 수는 없을까.

대부분의 우편함 사정이 비슷할 것이다. 어디서 정보를 얻는 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우편물이 풍성하다. 반가운 소식도 있지만 각 단체에서 기부금을 보내라고 부탁하는 것이 산같이 쌓인다. 자연보호 단체, 동물애호 단체, 상이군인을 돕는 단체, 에이즈 환자를 돕는 단체, 경관을 돕는 단체, 학교 동창회, 방문 간호사를 돕는 단체, 적십자 활동 단체 등 모든 사회단체들이 기부금을 원한다. 그것도 5달러부터 시작하여 그다지 크지 않은 기부금을 원하고 있다.

그런 작은 돈이 모여서 단체 운영의 큰 비용을 돕게 될까. 기부금을 모으는 뜻은 첫째가 단체의 홍보이고, 읽는 사람의 참가 의식을 드높이는 것이고, 비용의 일부라도 충당하는 목적이라고 본다. 때로는 큰 손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많은 작은 손도 필요하다. 언제나 작은 손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놀랄만한 큰 손이 있으면 더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이 기부금을 모으는 정신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부금을 바라는 단체의 근본 목적에 감명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여유가 없을 때는 마음만 보태게 된다. 어느 쪽이거나 그 단체가 생명을 이어가는 영양분이 되는 데는 틀림이 없다. 특히 문화단체의 경우 기부금을 모으기는 더욱 힘들다.
늦게나마 뜬쇠의 공연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공연하는 예술인들 보다 적은 관객 수였던 것도 마음이 불편하였다. 이런 느낌은 한국에서 많은 관객을 동원하였다던 영화를 극장에서 단 세 사람이 관람하였을 때의 느낌보다도 서글펐다. 영화는 생명이 없지만 뜬쇠는 생명체가 아닌가. 그러나 이런 과정을 밟지 않고 새로운 불길이 솟겠는가. ‘뜬쇠’를 설명하는 말 중에 있었던 ‘마당에서 태어나서 마당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다시 되새김하면서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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