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술, 담배 줄이는 사회

2007-05-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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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1부 부장대우)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과 담배가 필수품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누구를 만나면, 인사와 함께 담배를 권하고, 친해지려면 한잔 술을 마셔야 한다는 일종의 관행이었다.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지금도 어느 정도 그 전통(?)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서먹서먹한 사이지만 담배 한 대 같이 피고, 술 한 잔 먹다보면 일종의 동지 의식이 생기기 때문에 생긴 습관일 것이다. 미국인과 달리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인사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이런 사회적인 관습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유달리 술과 담배에 관대한 편이다.

한때는 미성년자가 어른이 되는 첫 발걸음이 술, 담배를 시작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젊은 시절에는 술에 취해 사고를 쳐도 어느 정도 이해해주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그러나 미국에 와서 많은 한인들이 생소하게 경험하는 것이 술과 담배를 사회악처럼 취급하는 분위기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고 있으면 처음 보는 미국인이 다가와서 담배를 몸에 해롭다고 한마디 하고 가고, 식당에 이어 이제는 아예 건물 내에서 담배피울 생각을 하지 못한다.이처럼 담배를 피면 야만인처럼 취급하는 분위기에 ‘더러워서’ 담배 끊었다는 한인들도 적지 않다.


술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칵테일 한잔, 맥주 한 병을 들고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 미국인의 습관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마셨다하면 고주망태가 돼야 직성이 풀리는 술버릇 때문에 낭패를 본 한인들이 주위에 한둘이 아니다. 어느 정도 술을 먹는다는 사람치고, 술 때문에 곤욕을 치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술 취해 기억이 없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있더라는 얘기 등이 대표적이다. 음주운전으로 고생한 사람들의 얘기는 너무 흔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개인의 자유를 너무 억압한다고 분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음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피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점차 술을 줄이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을 겪다보면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된다.
미국에서는 늦은 밤 시간에 차가 한 대도 없어도 빨간 신호등에 서 있는다며 미국인들은 준법정신이 투철하다는 비유를 어릴 적 한국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만일 빨간 신호등에 지나갔다가 만에 하나 티켓을 받게 되면 얼마나 큰 피해가 오는지 안다면 누구나 이렇게 할 것이다.안걸리면 그만이지만, 한번 걸리면 크게 손해를 주는 사회 시스템의 반복 효과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한인들은 뉴욕에서 가장 놀란 일 중에 길거리를 무단횡단하고, 담배꽁초를 그냥 길바닥에 버리는 사람들을 꼽았다. 한국에서 그런 야만스러운 행동을 했다가는 당장 티켓을 받고, 망신을 당하기 때문이다.좋은 사회는 어떤 시스템이 우월하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스템을 운영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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