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우면 가볍고 부드러운데

2007-05-23 (수)
크게 작게
문무일(전 MBC 아나운서)

사람들은 저마다 갖고 싶은 것을 얻게 되면 더 갖고 싶어 한다. 가지면 가질수록 가진 것에 대한 애착에 마음 써야만 하고, 더 갖고 싶은 집착은 고통을 부른다.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것이라도 얻고 나면 더 큰 야심을 품는 게 인간의 욕망이라서 욕심이란 끝이 없다. 가진 것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보다 더 얻고 싶은 충동으로 욕망의 노예가 되면 삶이 한층 무거워질 것이다.가득 차면 넘치고 넘치면 막힌다. 막혔다 하면 터지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도 채우고 담기만을 고집한다면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갖는 것에 추상같고 주는 것에 인색하면 주변 인심이 사나워진다. 결국 혼자 쓸어안고 넘어지기 쉽다.


삶이란 원래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한평생을 채우고, 담고, 비우고, 버린 끝에 어느 한 순간에는 모조리 비우고야 만다.삶과 죽음이란 이처럼 단순한 사건인 것이다.석가모니가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개탄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고 사는 일이라고”세상이란 무대에 존재하는 동안만이라도 가는 길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 인생에 있어 소통(疏通)만큼 소중한 일이 없다. 소통은 신선하게 해주고 정화시키며 새로워지게 한다. 막힌 것을 뚫어주고 고인 것을 씻어주는 힘이 있다.

생활의 신진대사란 채울 줄 알면서 비울 줄도 알고, 담을 수 있으면서 버릴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사실 비우고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는 가져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가진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법이다. 가진 것에 갇혀 살아야 한다.애써 이루어 놓은 것을 지켜내려면 지닌 것 만큼이나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내야 한다. 도(道)와 덕(德)을 닦아 동양정신의 금자탑을 이룬 노자(老子)는 스스로 학문을 숨겨 헛된 이름을 없애는데 힘썼다.

이름마저 무겁게 여겼던 그는 몸을 숨겨 자신을 추스린 인물이다.
그가 어떻게 여생을 살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160세에서 200여세를 살았다고 전해진다.양생(養生)의 방법을 터득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사람은 유명해지면서 복잡해진다. 권력이나 재물을 쥐고 있는 명망가는 좀처럼 그 명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만 하는데 명성을 얻기 보다 힘든 일이라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사람들을 피하고 다니는 게 상책이다. 미국의 전설적 재력가였던 하워드 휴즈 같은 사람은 가진 것에 갇혀 산 끝에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사람을 피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살 만큼 사람들로부터 유리된 채 비극적 삶을 살다 갔다.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건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다.
사람의 상대가 평생 사람인 까닭에 소통의 원칙을 갖고 인간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낮아지고, 단순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비우면 가볍고, 버리면 잊혀지고 던지고 나면 단순해 진다.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