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해의 5월

2007-05-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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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섭(브루클린)

맑은 햇살 쏟아지는 오늘 5월의 하늘처럼, 그 해 5월도 맑고 푸르르고 평화로웠다. 군트럭에서 내린 눈동자 풀린 공수부대에 의해, 일요일이었던 광주가 삽시간에 피바다가 되기 전까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진압봉과 착검한 M16 소총으로 길가던 시민,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참혹하게 살해하였다.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벌인 것은 창군 이래 가장 끔찍한 동족 학살이자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민간인 대살육 사건이다.4월 14일 중정부장 자리까지 찬탈한 전씨는 5.17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조치와 5.18 광주 대학살을 감행한다. 적소에서 모든 정보에 정통했다며, 우수한 정보수집 능력을 과시하던 미국측은 12.12와 5.18에 대해서만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광주항쟁 당시 소요사태 범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관공서, 공공기관, 은행과 주유소 등은 시민군과 시민들에 의해 지켜졌다. 시민들이 만든 주먹밥이 시민군에게 전해지던 고립된 빛고을 광주는 진동하는 피냄새와 화약냄새, 짙게 깔린 최루탄 연기와 소독약 냄새로 그 해 5월의 하늘은 스스로 눈을 감았다.충장로, 금남로, 도청 분수대를 꽉 메운 사람들, 태극기 꽂고 달리던 차량들, 손수레에 태극기 덮힌 관을 싣고 통곡하며 지나가던 그 광경.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아무 이유없이 총과 대검, 진압봉에 맞아 죽어가고 있다며 광주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던 여학생의 떨리는 마이크 목소리. 도청과 상무대에 가득찬 길게 늘어선 관들, 관 뚜껑 하나 하나 열어 가족을 찾는 사람들, 뚜껑이 열리자 오열하며 실신하는 가족들...
시체 일부분이 아예 없어 확인을 못한 채 멍하니 서서 눈물만 떨구던 사람들. 끊임없이 실려오던 피범벅 된 희생자들, 소름 끼치는 참상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도청 앞 국내외 기자들.

광주의 첫 희생자는 청각 장애인 김경철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금남로에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오던 중이었다. 처참히 깨지고 으깨진 아들의 시신 앞에 어머니는 정신을 잃었다. 두부처럼 잘리어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좌유방부자창, 우측 흉부 총상, 우흉부 관통 총상, 좌측 골반부 총
상, 하악골 총상, 대퇴부 관통 총상, 손옥례씨의 사망 검시서다. 부모님은 충격으로 앓다 돌아가시고 오빠는 머리에 곤봉을 맞은 후 군부대에서 고문을 받아 정상생활을 못한다.

해마다 5월의 푸른 잔디 위에는 두 모습이 있다. 파란 잔디 위에 쓰러져 통곡하는 사람들과 파란 잔디 위에서 ‘나이스 샷’을 외치는 그 때 그 사람들.

하늘이시여, 진정 이 민족을 사랑하시면 제발 이 민족을 용서치 마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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