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식에게 어떤 직업을 권해야 하나

2007-05-21 (월)
크게 작게
김륭웅(공학박사)

전에 미국인 친구가 “나는 일년에 100만 달러를 벌어도 담배회사에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의 미국인 친구는 매우 가난한 유대인이었는데 한번은 아주 비싸게 보이는 양복을 입고 왔길래 “돈이 어디서 생겼어요?” 하고 물어봤더니 구세군에서 거의 공짜나 다름없
이 샀다고 하면서 “돈이 없으면 이런 것을 사는데도 자연히 알게 된다”고 하여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라면 어떨까. 젊었을 때라면 어찌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물론 아니다. 그 돈 벌어서 더 좋은 곳에 쓰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속 모르는 사람들은 돈이 많아 그 정도는 있으나 없으나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누구 못지않게 깨끗해서도, 양심을 내세워서도 아니다. 그런 거창한 이유보다는 그런 곳에 매일 매일 출근해야 한다는 게 괴로워서일 것이고, 또 누가 어디서
일하느냐고 물어봐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식들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대 ‘사상계’라는 월간지에 난 사진 하나를 난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상의 앞 뒤에 자물쇠를 빼곡히 달고 외판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진의 제목이 ‘이러고도 산다’였다. 장준하 선생께서 하시던 사상계를 생각하면 우선 이 사진과 사상계 신인상을 수상한 시인의 시
‘나 이렇게 살다가’ 이 두 가지가 떠오른다.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이러고 사는게 어째서”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 당시엔 또 골목마다
허름한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금이나 은 삽니다. 채권 삽니다”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지금은 그런 적나라한 우리네 삶의 현장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오라잇” 하는 버스 차장이 있을 때 “차내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은 인천시 만석동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 제침공업주식회사로부터 여러분이 일상 가정에서 쓰시는 바늘을 가지고 나왔어요. 네, 여러분이 종전에 쓰시던 바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쓰시는 도중에 부러진다거나
녹이 슨다는 결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품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하는 외판원의 모습도 그 차장 아가씨의 모자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의 순수도, 낭만도, 아름다운 영혼도 함께.

이 세상에는 수 만가지의 직업이 있을 것이다. 그런 직업은 대략
(1) 남에게 어떤 의미에서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직업
(2) 도움도, 해도 안 주는 직업
(3)해만 주는 직업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겐 이것이 세상 직업의 분류법이다. 우리가 인간의 탈을 쓰고 산다면 1번과 2번의 직업만 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나는 젊은 세대를 만날 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과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그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이 보람을 느끼고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으며 인류의 공통선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도 않는 일을 하기엔 우리네 인생은 너무나 짧다.

개인적으로 나는 시민과 농부, 육체노동자, 예술가, 의사-간호사들과 같이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깊은 사색을 통하여, 노동을 통하여, 수련을 통하여 매일 매일 고통과 싸우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삶의 깊은 부분을 흘깃 들여다 보며 인간이라는
동물의 깊이를 느끼며 그 속에서 ‘인간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참으로 평등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부모 세대들도 우리의 자식들이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하는가를 놓고 좀더 열린 마음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자식이 하고 싶어하는 일과 공부를 깊이 생각하고 그 바램이 맞는 일인지 같이 토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일, 그 일을 하면서 가족과 이웃,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우리 부모 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