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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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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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석(정신과전문의, 정신분석학자.한미문화연구원장)

지난 4월 16일 버지니아 텍에서 총기사건이 있었을 때 재미 한인은 물론 본국의 모든 사람들이 흥분하고 떠들썩했었다.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한테 위로(사과?) 전화를 하고, 주미 한국대사도 애도(사과)의 표시로 32일간 단식 기도할 것을 제안했다. 뉴욕총영사는 긴급 단체장 회
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교회 목사들은 철야 촛불기도회도 시행했다. 성금도 모았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정신과 전문의로서 이번 총기사건을 남들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한 나는 왜 우리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과잉 내지는 부적합한 반응을 보이는지
그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이미 보도된 내용들을 빌리자면 우리 한국사람들은 민족의식이 강해서 한 사람의 행동이 모든 사람들의 책임인양 느끼기 때문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껴 이것을 해소하려는 방법으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한인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미국사회에서의 지위에 대한 느낌을 반영하고 있다.첫째, 인종차별 의식, 즉 백인들이 차별 대우하는 감정이 악화되지 않을가 하는 우려가 숨어있다. 둘째, 민족적 주체성(identity)이 흔들려 불안감이 조성된 것이다. 즉, 한국사람들은 그런 끔
찍한 짓을 저지를 사람들이 아니라는 자체 이미지와 긍지, 그리고 자부심이 흔들린 것이다.


미국에 이민와서 살면 어쩔 수 없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는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한국사람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흔들렸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행동의 발로이다.셋째, 주인의식의 문제다. 즉, 미국은 백인의 나라이며 피부가 노란 한국사람은 도저히 백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에 오래 뿌리를 박고 살아도 이 땅의 주인이라고 느낄 수 없다. 때문에 마치 셋방살이 하는 사람이 주인 식구들한테 잘못 했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처리하기 위한 행동이다.
넷째, 사대사상의 발로이다. 이것은 들추어내기 싫은 말이지만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뿌리깊게 흘러내리는 이 감정은 가끔 뚜렷하게 표면화 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우리 한국사람들의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영된 행동들인 것이다.

얼마 전에 ‘요코 이야기’라는 문제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았다. 누가 이 책을 역사 왜곡이라고 들고 일어섰는지 모르지만 전연 그런 사실은 없다. 이 책은 문학책이고 역사라고는 단순히 2차대전이 끝날 때를 배경으로 북한에 있던 한 일본사람 가정에 일어난 일들을 자전적 소설로 쓴 것이다. 이 과도기적이고 무정부적인 상태에서 여러가지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잔인함, 온정 냉정함, 치근치근한 파렴치도 있다. 이 책에서 문제가 된 것은 잔인함과 성에 굶주린 파렴치한 이야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특히 미국사람들이 좋은 모습은 무시하고 나쁜 모습들만 받아들여서 한국사람 전체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외국인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줄까봐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반응이다.
모든 독자들이 그러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나의 소감은 참으로 감동적인 책이었다. 즉, 이 책에는 좋은 면이 더 많으므로 자녀들이 읽게 하되 부정적인 면은 부모들이 대화로서 잘 지도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포들이 미국사람들과 대등하게 떳떳하게 잘 살려면 한국사람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한 한 가지 길은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사람들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신경을 쓰고 행동하도록 노력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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