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2007-05-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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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환(뉴저지)

14세기 중반 유럽에는 흑사병이 유행하여 도시 전체의 1/2 내지 2/3 이상의 주민들이 사망했다. 처음에는 그 치료 방법을 몰라 가톨릭 신부들이 신도들을 교회에 가득 모아놓고 회개 및 구원의 기도를 했는데 그렇게 많은 신도들을 한군데 모았던 것이 도리어 흑사병을 빨리 전염시켜서 온 신도들이 집단으로 전염되어 죽는 수가 많았다. 그러자 야반도주하여 사람이 드문 시골로 숨는 가톨릭 신부들이 많았다.

도시에는 주인 없는 텅텅 빈 교회가 늘었고 온 가족이 몰살하는데 어쩌다 운 좋게 살아남아 큰 유산을 물려받은 어린이 귀족 영주들도 흔했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종교를 만들었다. 그러나 철학은 인간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그것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냉철하게 맞을 수 있게 연습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인생의 삶과 죽음의 참 뜻을 깨닫고 건전한 인생관을 정립하게 된다.


가톨릭의 공갈, 회유, 살해 협박을 외면하고 평생을 렌즈공장 직공으로 꿋꿋하게 살다 간 화란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나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죽음에 대한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기의 죽음을 당당하게 맞는 사람의 의연한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럽고 아름답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사후 천당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기 앞서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발휘되는 것 같다.

영국에서 췌장암으로 일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John Brandrick이란 남자(62세)는 평생 모은 재산을 그의 마지막 남은 일년을 마음껏 즐기는데 모두 탕진했다고 한다. 모든 재산을 다 써버린 후 췌장암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통보를 받고 그는 앞으로 더 오래 살게 되었다는 기쁨에 앞서 빈털털이가 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허탈에 가득차고 말았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정신으로 세상을 살았더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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