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넌 얼마나 행복하니?

2007-05-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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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잔인한 달 4월이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까지 터지면서 악몽처럼 힘겹게 지나갔다.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한인 ‘조승희’라는 인물을 통해 그간 한인사회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고 한인 학부모들의 자녀양육 방식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어쩐지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하다. 대다수 한인 학부모들은 그래도 여전히 ‘내 자식만은 다르다’는 위험한 생각에 빠져 있다. 자식 농사는 큰소리치면 안 된다고 했거늘…

‘내 자식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고 자신 있게 외치는 부모들. 물론 부모만큼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마는 자녀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하나쯤 가슴에 품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녀에게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채워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도 용돈이나 듬뿍 듬뿍 쥐어주는 것으로 ‘부끄럽지 않은 부모 노릇을 하고 있노라’고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부모들도 있다.


학교에서 다른 집 아이가 행여 사고라도 치면 별 생각 없이 마구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식이 바깥에서 어떤 존재로 각인되고 있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설령 사고라도 치면 나름대로 이유를 들이대며 자기 합리화에 급급해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버니지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직후 본보와 e-메일 좌담을 나눴던 한인 청소년들의 한결 같은 불만은 ‘어른들은 자녀들이 과연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사는지 너무 모른다’는 점이었다.

하루의 일과가 공부로 시작해서 공부로 끝나는 잔소리 대화로만 가득할 뿐 정작 다치고 여린 자신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부모자식간의 따뜻한 대화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푸념이었다. 끊임없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려 해도 전달할 길이 없거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다보니
다른 곳에서 불만을 표출하게 되고 결국 뜻하지 않은 사고를 치게 된다는 설명이다.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들은 자녀가 평가하는 부모 성적표에서 과연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지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자녀에게 한번쯤 물어보자.
“넌 행복하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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